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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찬 Oct 30. 2020

아임 파인, 땡큐 - 부제(단풍국 워킹홀리데이) #25

#25 옐로나이프의 오로라

옐로나이프의 오로라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기간이 거의 다 끝나가고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여행으로 옐로나이프에 가기로 했다. 옐로나이프는 캐나다에서 오로라가 가장 잘 보이는 곳 가운데 하나로 유명한 곳이다. 일하던 호텔을 그만두고 떠날 짐을 다 챙긴 뒤 친구 집에 짐을 맡겨두고 간단한 짐만 꾸려서 같이 동행할 누나 두 명과 옐로나이프로 떠났다.


캐나다에서도 북쪽에 있는 옐로나이프는 겨울에 온도가 영하 30, 40도까지 떨어질 정도로 추운 곳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3월이었는데 그때도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가 계속되었다. 이렇다 보니 실생활에서 입는 옷으로는 그 추위를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옐로나이프에서는 방한용품들을 렌탈할 수 있는 곳들이 있다. 우리는 오로라 투어를 신청했던 업체에서 3일간 방한용품들을 빌렸다. 그리고 밖에 날씨가 너무 추워서 오로라를 보러 나가는 시간 외에는 거의 숙소 안에만 있었다.


한 번은 낮에 숙소에서 꽤 거리가 멀던 올드타운으로 걸어가다가 미친 듯이 추워서 마을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택시를 불러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호되게 당한 이후로 숙소 근처에 밥 먹으러 갈 때, 오로라 보러 갈 때 외에는 숙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로라의 특성상 깜깜한 늦은 밤이나 새벽에 볼 확률이 높기 때문에 투어도 늦은 시간에 시작된다. 그래서 낮에는 자고 밤에는 일어나서 오로라를 보러 나갔다. 우리는 3박 4일간 오로라 헌팅 투어 2일, 오로라 빌리지 하루로 일정을 짰다.

오로라 헌팅 투어는 말 그대로 오로라 사냥이다. 오로라가 뜰만한 곳에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오로라가 뜨면 내려서 오로라를 구경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오로라 수치와 구름, 달 등의 기상요건들을 살피고 오로라가 뜰만한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한다. 오로라 빌리지는 오로라 관측소 같은 마을에 있는 티피라는 천막에서 따뜻하게 몸을 녹이다가 오로라가 뜰 때 나와서 오로라를 보고 사라지면 다시 천막 안에서 따뜻하게 있다가 또 오로라가 뜨면 나와서 보고 하는 곳이다.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오로라 헌팅 투어는 오로라가 뜰만한 곳으로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다. 대신 계속 밖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추위에 많이 노출돼서 추위에 약하면 힘들 수도 있다. 그리고 오로라 빌리지는 오로라가 뜰 때까지 따뜻하게 대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그 장소에 오로라가 뜨지 않으면 오로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둘 다 섞어서 하게 되었다.

우리는 운 좋게 3일 모두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첫날에는 기상조건이 안 좋았지만 더 이상 도로가 없는 곳까지 열심히 이동한 끝에 구름 없는 곳으로 가서 꽤 멋진 오로라를 볼 수 있었고 둘째 날은 오로라 빌리지였는데 기상조건이 좋지 않아서 아쉽게 살짝만 볼 수 있었다. 티피라는 오두막에서 몸을 녹이며 오로라가 뜨기를 기다렸지만 떠나기 전에 아주 잠깐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우리는 헌팅 투어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곳으로 함께 가서 천막 같은 곳 안에서 오로라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한 오로라가 계속 떠서 나는 안에 거의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열심히 오로라를 찍고 있었다. 그러다가 추위 때문에 카메라가 꺼지자 누워서 눈으로 오로라를 담았다.


하지만 카메라도 꺼지고 너무 춥기도 해서 천막 안에 들어가 잠깐 몸을 좀 녹이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나와보라며 큰 소리가 들렸다. 안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다 같이 밖으로 나갔다. 여러 사람들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오로라가 선명하게 떠있었다.

오로라는 춤을 추듯 요동치고 있었고 갑자기 핑크색 오로라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계속 초록색 오로라만 보고 핑크색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 카메라를 들어 담으려고 했지만 카메라는 아직도 추위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바로 포기하고 ‘눈으로라도 제대로 담아야겠다’ 생각해서 눈으로 열심히 담았다. 그 요동치는 오로라를 보고 있자니 뭔가 피아노 선율이 머릿속에 스쳐가는 것 같았다. 너무 황홀했고 오로라를 보고 감격해서 우는 사람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황홀한 순간은 너무 짧았고 그 이후로 그런 오로라는 다시 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떠나는 순간까지 뒤돌아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래도 사실 그전까지는 조금 만족스러울만한 오로라를 못 봤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선물처럼 나타나 준 그 오로라 덕분에 기분 좋게 옐로나이프 여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캐나다에 있으면서 오로라를 본 건 총 3번인데 그중 제대로 본 건 옐로나이프를 포함해서 2번이다. 볼 때마다 다른 색,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뭔지 모를 감동이 밀려온다. 앞으로 살면서 또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로라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마음 한편에 두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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