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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찬 Oct 31. 2020

아임 파인, 땡큐 - 부제(단풍국 워킹홀리데이) #27

#27 남미 여행,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남미 여행,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이윽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가 다 끝나고 마지막으로 한 달간 남미 여행을 한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페루로 들어가서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으로 나가는 비행기 표를 끊어 놓고 페루로 떠나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슬슬 터지기 시작할 때였지만 당시에는 한국이 난리가 나고 있던 상황이었고  이미 남미행 표를 다 끊어놔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미 통틀어서 확진자가 1,2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위험하다거나 급박한 상황이 오리라고는 예상조차 못했다.


그렇게 페루 리마 공항에 도착을 했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지갑을 잃어버렸다. 아직 돈이나 카드를 나눠서 보관하지 않고 지갑에 모든 게 들어있었기 때문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공항직원들한테 지갑 잃어버렸다고 계속 얘기하고 다니고 내가 지나온 곳 전부 살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방법이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갈 티켓을 끊으려고 하는데 돈도 없고 신용카드도 없어서 살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러다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분에게 포켓 와이파이를 빌려 쓰며 핸드폰으로 결제하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쉽게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6시간 정도가 흘렀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넋이 나간 채로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공항직원이 나를 찾았다. 지갑을 찾았다고 와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잔뜩 기대한 채로 직원을 따라갔다. 따라가 보니 정말 내 지갑이 거기 있었다. 나는 너무 감격해서 그 직원에게 너무 고맙다고 “넌 내 생명의 은인이고 천사야”라고 거듭 감사인사를 했다. 아직도 그 고마운 직원 얼굴이 기억난다.


자칫하면 내 인생 최악의 나라가 페루가 될 뻔했는데 그 친절하고 착한 직원 덕분에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지갑을 보니 현금 300달러가 없어졌지만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나는 300불만 사라진 게 어디냐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에 너무 감사하게 됐고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처음 도착한 리마에서는 하루만 지내다가 와카치나 사막으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리마 한인민박에 짐을 풀고 정보를 얻어서 환전도 하고 페루 유심도 개통했다. 그 후 사랑의 공원이라는 곳에서 산책을 하고 노을을 봤다.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을 몇 번 당했다. 캐나다, 미국에서도 안 당해본 인종차별을 처음 겪어서 당황스러웠지만 몇 번 겪다 보니 그냥 신경 안 쓰고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리마를 떠나 오아시스가 있는 와카치나 사막에서 이틀 지내면서 버기카 투어, 샌드 보딩, 근처 섬으로 가는 투어 등을 하고 사막에 가만히 앉아서 오아시스를 바라보기도 하고 밤에도 사막에 올라가서 보름달과 오아시스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그 후 아레키파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났고 콜카 캐년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비가 와서 술만 마셨다. 관광은 거의 하지 못한 채로 아레키파 도착 3일째 되던 날 야간 버스를 타고 쿠스코로 향했다. 그런데 야간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 그때 갑자기 페루 대통령의 긴급담화가 시작되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코로나로 상황이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모든 공항 긴급폐쇄, 도시 간 이동 금지, 외출금지 등의 명령이 내려졌다. 그것도 단 하루의 시간도 주지 않고 그 모든 게 시행되었다. 나는 이동거리 10시간이 넘는 야간 버스를 이미 탄 상태여서 그 다음날 도착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는 것이었다. 숙소도 잡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쿠스코에 있는 한인민박부터 급하게 예약을 했다. 만약에 숙소에 갇히게 되면 한국인들끼리 모여 있는 곳이 더 안전하고 살기도 편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쿠스코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로 갔고 들리는 소식은 암담했다. 모든 투어가 중지됐고 여행객들이 다 발이 묶였다. 나는 다음 날 마추픽추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하루 차이로 갈 수가 없었다. 결국 기약 없이 숙소에 체류하게 되었다. 봉쇄 기간은 4월 31일까지로 그때부터 약 2주 간의 기간이었지만 기간이 더 늘어날지 말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 날 바로 장을 봐와서 숙소에서 버티기에 돌입했다. 우리는 같은 층을 쓰는 사람끼리 다 같이 장을 보고 밥을 해 먹으며 생활하기로 했다. 서로 불편하지 않게 약간의 규칙 같은 것도 만들고 나름의 역할분담도 하며 서로 배려하고 살기로 했다. 모두 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갇히게 될 줄 몰랐었기에 서로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같이 협동하며 잘 지냈다. 그렇게 갇히고 열흘쯤 지났을 때 영사관에서 전세기 수요조사가 있었다.


관계자 분들이 노력해주신 덕분에 한국에서 페루에 갇힌 국민들을 위해 특별기를 띄우기로 한 것이다. 전세기 비용 부담은 타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고 처음에 공지된 가격은 쿠스코-리마 500달러, 리마-한국 370만 원이었다. 합치면 약 430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그만한 돈도 없고 곧 폐쇄조치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어서 처음에는 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집에 사실을 말하니 가족들이 너무 걱정해서 결국은 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 숙소 같은 층에서는 결국 나 혼자만 전세기를 타고 떠나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남아서 폐쇄 조치가 풀릴 때까지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 비행기는 결국 한국인 약 200명을 싣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내 남미 여행은 그렇게 끝나게 되었다. 여행길에 올라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렇겠지만 이렇게 여행이 끝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너무 아쉬웠다. 코로나가 얼른 종식돼서 다시 배낭을 싸고 여행길에 오를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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