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재취업
재취업
약 한 달 간의 미국 여행이 끝이 났다. 나는 뉴욕에서 가까운 토론토로 이동하면서 다시 캐나다 땅에 발을 들였다. 캐나다 서부인 캔모어에서 살아 봤으니 비자가 반년 남은 시점에서 캐나다 동부에서도 살아보고 싶어서 토론토로 오게 되었다.
토론토에 있으면서 초반에는 도시 적응도 좀 하고 집도 알아보려고 했지만 바로 전에 뉴욕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토론토의 도시 분위기는 뉴욕에 비하면
그저 그렇게 느껴졌고 별 감흥 없는 도시 풍경에 로키산맥이 보이는 대자연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금전적인 문제가 크다. 캐나다의 대도시인 토론토는 물가와 세금이 살인적이었고 집 값 또한 내 돈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토론토에 며칠 머물면서 계산해본 결과, 내 자금으로는 토론토에서 잘 버텨봐야 한 달 정도 일 것 같았다.
바로 일을 할 수 있으면 괜찮겠지만 그것도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다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내가 있던 알버타 주는 캐나다 전체에서 세금이 제일 싸고 캔모어나 밴프 같은 경우는 스탭 어컴이 있는 곳으로 일을 구하면 집 값도 아낄 수 있으니 캐나다 내에서 돈 아끼기에는 가장 나은 곳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결심하고 토론토는 그냥 잠깐 여행하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토론토에 오기 바로 전에 뉴욕을 가지 않았다면 토론토의 도시 풍경이 멋있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뉴욕을 보고 나니까 토론토는 뭔가 뉴욕의 하위 버전인 것 같이 느껴져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뭘 많이 보고 싶다기보다는 쉬고 싶었고 그래서 토론토를 별로 돌아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 토론토에 가게 된다면 또 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토론토의 도시 풍경과는 별개로 좋았던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세계 3대 폭포로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였다.
나이아가라 폭포 또한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직접 보니 훨씬 웅장하고 멋있었다. 역시 유명한 건 괜히 유명한 게 아닌가 보다.
폭포 쪽으로 배들이 지나다녔는데 빨간색 우비 입은 사람들이 있는 배는 캐나다에서 온 배, 파란 우비 입은 사람들이 있는 배는 미국에서 온 배였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두고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이 나눠져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나도 같이 투어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시간도 없었고
폭포수를 맞으면 감기에 걸릴 것 같아서 포기했다.
이미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물방울이 튀어서 얼굴이 촉촉해졌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았다. 만약 다음에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꼭 저 배에 타보고 싶고 하루 머물며 오랜 시간 나이아가라 폭포를 바라보고 싶다.
그렇게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보고 토론토를 떠나게 되었다. 일단 토론토를 떠나 전에 일했던 곳에서 잠시 얹혀살았는데 그때가 9월 말이었다. 가을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단풍을 보기도 전에 눈이 와버려서 망했다. 단풍국이라 불리는 캐나다에서 단풍을 못 보다니, 그리고 9월에 눈이 오다니, 여러모로 스펙터클한 동네다.
이렇게 살짝 노랗게 변한 몇 개의 나무들을 본 게 다였다.. 아무튼 나는 캔모어에 머물면서 밴프에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레쥬메(이력서)를 넣고 직접 돌리러 다녔다. 여차하면 다시 캔모어에서 일을 할까 생각할 정도로 초반에 바로 일을 구하진 못했다.
그렇게 직접 레쥬메를 낸 곳에서 몇 개의 면접을 보고 기다리던 와중에 밴프에서 두 번째로 좋은 호텔인 림락 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지원한 분야는 하우스키퍼였고 캔모어에서 하우스키퍼 한 경력이 플러스 요인이 된 것 같았다. 합격 소식을 듣고 짐을 싸서 바로 림락 호텔로 갔고 오리엔테이션을 한 후에 호텔 안에 있는 직원 숙소로 들어갔다. 일 자리와 숙소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했고 꽤 이름 있는 호텔에 들어가게 돼서 기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밴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설레었다.
매일 로키 산맥을 보면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근무환경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나의 단풍국 워킹홀리데이 제2막이 시작된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