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by 야호너구리

업무상의 출장으로 인하여 독일을 다녀왔다. 20대 때 처음으로 영국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근 10년 만에 유럽을 다시 한번 다녀오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 출세했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그 당시에도 스마트폰은 있었지만,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그렇게 적극적으로 보는 시대는 아니었다. 그나마 숙소 예약이나, 구글 지도를 볼 수 있는 정도였다. 10년 전 영국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신문을 읽고 있었다. 관광객 티를 내고 싶지 않아 나도 그들처럼 보이겠다고, 잘 읽지도 못하는 지하철 일간지를 들고 읽는 척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독일 출장이라 영국에는 다시 방문하지 못했지만, 처음 가보는 독일은 새로웠다. 굉장히 목가적이고 가정적이었다. 주말에는 마당에서 파티를 즐기는 모습도 보았고, 일 년 내내 여는 한국과 다르게 주말이면 닫는 가게들도 새롭게 보였다. 기본적으로 독일이라는 나라는 노동을 효율적으로 하는 게 아닐까, 아니 그냥 '쉼'을 하나의 권리처럼 당연하게 누리는 것 같았다.


보통 출장이란 게 한식당을 많이 가게 되는데, 웃긴 것은 다른 나라 식당들은 주말에 죽어도 안 열지만, 한식당은 주말에도 연다는 것이었다. 웃기면서 씁쓸했다.


그 지독한 성실함, 아니 어쩌면 일 중독이라는 병이, 이곳 독일까지 와서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독일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만큼만 하고 멈추는 법을 아는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쉼' 속에서도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기어이 일거리를 찾아내는 사람들 같았다. 물론 나도 출장이니 일하러 온 거지만. 그들을 보며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왜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걸까.


물질적 풍요가 인생의 전부라고 믿어서 그런가. 남들보다 뒤처지면 죽는다고, 그렇게 평생을 배워와서 그런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10년 전, 읽지도 못하는 신문을 들고 영국인인 척 연기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고, 여전히 무언가를 흉내 내고, 여전히 이 불안한 삶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3번의 기내식과 공짜술을 마시고 어렴풋이 잠이들려고 할때, 출장을 돌이켜봤지만.

이상하게 쾰른 대성당의 웅장함보다, 주말에도 환하게 불을 켠 그 한식당 간판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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