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부족의 아침을 견디는 법
출근길 지하철 문이 열리면, 거기는 럭비 경기장이다. 터치다운을 하듯 몸을 던져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스크럼을 짜고, 철저한 수비 대형을 갖춰야 겨우 내 한 몸 서 있는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이 꽉 찬 밀도 속에서 남자들의 머릿속을 스치는 건 공포다. 행여나 인파에 밀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존 본능. 그래서 가방을 앞으로 메고, 두 손을 든 채 투항하듯 서 있는다. 애초에 사람을 짐짝처럼 싣는 이 시스템이 문제일 텐데,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조심해야 하는 이 상황이 참 피곤하다.
숨이 턱턱 막힌다. 이 좁은 공간에 이산화탄소 농도는 얼마나 될까. 이러다 산소 부족으로 다 같이 기절하는 건 아닐까. 환기 시스템은 돌아가고 있는 건지, 내 폐가 정화 필터가 된 기분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귀에 커다란 헤드셋을 끼고 있다. 예전에 쓰던 게 박살 난 후로 나도 하나 사고 싶은데, 2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 앞에 망설이고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지옥 같은 소음과 밀집도에서 나만의 쾌적한 공간을 살 수 있다면 그건 싼값일지도 모른다.
유튜브, 쇼츠, 게임. 사람들은 저마다의 작은 화면 속으로 도망친다. 어쩌면 이 좁아터진 지하철이 현대인에게 허락된 유일한 여가 장소일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영화 <토탈 리콜>이 생각난다. 미래 시대에도 노동자들은 지구 반대편 식민지로 가기 위해 거대한 지하철 같은 것을 탄다. 과학이 발전해도, 먹고살기 위해 짐짝처럼 실려 가는 인간의 운명은 변하지 않나 보다. 참 웃긴 세상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비밀 요원 체험을 선택하지만, 나는 다르다. 만약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스파이니 비밀 요원이니 하는 피곤한 건 사양이다. 기냥 돈 많은 백수가 되어 평안하게 숨 쉬는 체험, 그거 하나면 족하다. 영웅은 영화에서나 하라고 해라. 나는 쉴 곳이 필요하니까.
나는 우울증이라 그나마 이 고밀도 비상식량같은 밀도를 견디지만,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이 문이 닫히는 순간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비좁은 틈새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공유하며 달리는 아침. 이 다양한 군상들은 대단한 부자가 되려는 것도, 지구를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이렇게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산소가 부족해 머리가 멍하다. 그래도 내려야 할 역은 온다. 어쩌겠는가. 평범함이란 골에 터치다운 하기 위해, 오늘도 몸을 던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