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관리자

음식은 짜야 맛있다.

by 야호너구리

테마파크를 관둔 후에 몇 년간 허송세월을 보냈다. 공무원 시험 준비랍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추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호프집 매니저였다.담당 업무란에는 '매장 운영 총괄 및 직원 관리'라고 적었다. 꽤 그럴싸해 보인다. 리더십도 있고, 가게 하나를 책임질 만큼 생활력도 강해 보이니까. 하지만 그 관리라는 단어 뒤에는 내가 감당하지 못한 실패가 숨겨져 있다.


시작은 별거 없었다. 요리하는 거 좋아하고, 술 좋아하니까. 단순하게 이 일은 나랑 좀 맞겠네 싶어서 덤벼들었다. 하지만 막상 닥친 현실은 내 안일한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일단 내 입맛부터가 문제였다. 나는 평소 싱겁게 먹는 편이다. 당연히 내가 만드는 요리에도 그 기준이 들어갔다. 초기에 일할 땐 내가 간을 보면 딱 좋은데, 손님들은 싱겁다고 아우성이었다. 술집 안주라는 건 혀가 마비될 정도로 짜고 자극적이어야 술이 술술 들어간다는, 그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를 나는 몰랐던 거다. 나는 손님들 주치의라도 된 것 마냥 간 건강을 위해 꿋꿋하게 저염식 안주를 내놓고 있었으니.


그래도 난 고집불통은 아니라서, 며칠 뒤부터 내 요리 스타일을 수정했다. 내 입에 으악, 짜다 싶을 정도로 소금과 조미료를 쳤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때부터 왠지 모르게 안주가 맛있는 집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엄마를 닮아 손이 커서, 양을 푸짐하게 퍼준 탓도 컸을 것이다. 그리고 보통 음식은 짠 게 맛있다.)


안주는 그렇게 타협했지만, 사람은 타협이 안 됐다. 나는 꽤 '좋은 매니저'가 되고 싶었다. 과거 테마파크에서 일하던 시절,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청춘이 헐값에 착취당하는 걸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이다. 내 밑으로 들어오는 알바생들에게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빛나는 젊음을 최저 시급으로 사면서, 영혼까지 갈아 넣으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장님과 싸웠다.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2명은 있어야 돌아갑니다. 인건비를 아끼려는 사장에게 고집을 부려 근무자를 늘렸고, 면접 보러 온 친구들에게는 사비로라도 차비를 챙겨주려 애썼다. 내가 좀 더 움직이고, 내가 좀 더 고생하면, 모두가 웃으며 일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당시 그 바닥에서는 아무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주휴수당은커녕 최저시급도 안 지키는 게 관행이었다. 나는 이럴 거면 법은 왜 있냐며 내 권한으로 모든 알바들에게 근로계약서와 주휴수당을 챙겨줬다. 그게 내가 생각한 어른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었다. 가게는 사장이 가끔 들르는 오토 매장이었는데, 매출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문자가 날아왔다. 네가 애들을 너무 오냐오냐하니까 빠진 거 아니냐. 심지어 가게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장의 여동생까지 나타나 나를 쥐 잡듯 잡았다.


안주는 짜게 만들어서 겨우 팔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싱거워빠져서 사람을 독하게 다루지 못했다. 정확히는 물러터진것에 가깝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자본주의라는 전쟁터에서 착함은 미덕이 아니라 무능이라는 것을. 사장이 원한 건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매니저가 아니라, 소금을 팍팍 쳐서 술을 팔아치우고 알바생들을 쥐어짜서라도 매출을 뽑아내는 악덕 감독관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 역할을 수행할 위인이 못 되었다. 결국 나는 도망치듯 그 가게를 그만뒀다. 떠나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알바들을 불러 모았다. 패잔병의 유언처럼 말했다.


근로계약서 잘 갖고 있어라. 그거 있으면 너희 함부로 못 자른다. 계속 일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억울한 일 당하면 그거 꺼내서 싸워.


이력서에는 '개인 사정으로 인한 퇴사'라고 적었지만, 진짜 이유는 악역을 맡을 용기가 없어서였다. 누군가의 젊음을 착취하지 않고서는 굴러가지 않는 이 바닥의 생리가 역겨웠고, 그보다 더 역겹고 한심했던것은그 생리에 적응하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혼자 성인 군자인척.


일을 관뒀을 때, 가족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내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그때 돌아온 답은 이거였다.


네가 그걸 왜 신경 쓰냐. 사장도 아닌데.


맞다. 내 오지랖이었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만 사는 세상에서 나 혼자 유난을 떨었던 거다.


그 무렵, 누군가 내게 지나가듯 말했다. "너는 인상이 참 착해 보여. 남 생각도 많이 하고. 사회복지사 같은 거 하면 잘하겠다."


그 말이 동아줄처럼 보였다. 사실 내 우유부단함과 약해 빠진 마음을 '착함으로 포장해 준 말이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게 유일한 살길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그곳에 가면 남을 해치지 않고도,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지 않고도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쟁에 지치고 악역에 실패한 나에게, 그 직업은 완벽한 도피처였다. 그렇게 나는 홀린 듯이 사회복지사 자격증 준비를 시작했다. 그 길이 또 다른 모순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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