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

미래의 내가 훔쳐 간 것들에 대하여

by 야호너구리

내 인생 미스터리 중 하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사라진 야구공이다. 친구와 캐치볼을 하다가 실수로 숲풀 쪽으로 공을 날렸다. 분명히 나무 덤불 사이로 떨어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친구랑 나는 덤불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런데 없었다. 진짜 말 그대로 증발했다. 바닥에 구멍이 난 것도 아니고, 누가 주워 간 것도 아니었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공은 세상에서 지워졌다.


그때 어린 우리는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이거 외계인이 가져간 거다." "아니야, UFO가 빨아들인 거야."등등 헛소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 문득 그때 그 사건을 떠올리며 나는 다른 가설을 세워본다. 그건 외계인이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온 미래의 내가 가져간 게 아닐까.


도대체 미래의 나는 굳이 타임머신을 타면서까지, 그 낡은 연습용 야구공을 왜 훔쳐 갔을까.


어쩌면 그 공은, 내 인생의 내가 스스로 알지못하는 변곡점 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공을 찾았다면, 잃어버린것은 노력하면 찾을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나는 그걸 알고 있었던 거다. 내가 헛된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말아먹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그 공을 뺏어서 세상을 살다보면 잃어버릴것들이 많다고 미리 경고한거아닐까. 예방주사 같은거지


그때 그 공처럼, 내 인생에서는 참 많은 게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스무 살의 패기, 첫사랑의 설렘, 통장의 잔고, 그리고 머리숱까지, (아직 머리는 있지만 불안하다.) 분명히 내 손안에 있었는데, 잠깐 한눈판 사이에 덤불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만약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그공을 다시 찾아올까.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그 야구공은 지금쯤 어느 차원의 틈새에 끼어 있을까. 아니면 진짜 구석 어딘가에, 미래의 내가 몰래 숨겨놓고 있는건 아닐까.


확실한 건, 그 공은 사라졌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에 익숙해진, 조금은 슬픈 어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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