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들에 이유가 필요한것일까.
설날은 명절이 아니다.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완료했는가에 대한 성능 시험장이다. 이번 시험은 입장 30분 만에 종료되었다. "애 하나 키울 자신이 없냐? 그렇게 능력이 없어?" 폭언은 질문의 형식을 띠고 날아왔다.
나는 답안을 작성하지 않고 본가를 나왔다. 등 뒤로 "앞으로는 연락도 하지 말고 오지도 말라"는 고함이 꽂혔다. 일종의 협박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아니, 내게는 그 협박에 응수할 카드가 없다. 쥐고 있는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 나는 그저 그 폭력적인 언어들이 내 마음을 무너뜨리는 현상을 무력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그건 거래여야 한다. 월 200만 원을 지원해 줄 것인가, 아니면 낳아만 놓을 테니 알아서 키워줄 것인가.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들은 "남들은 능력 없어도 애만 잘 키운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에게는 "능력이 있어야지"라고 다그친다. 이 논리적 모순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더이상의 설득도 이해도 할수없어서,
집에 돌아오니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엄마였다.
[엄마 말 함부로 듣지 말고 잘 생각해 봐.]
[자신이 없는 거야?]
[아니면 와이프가 애기를 싫다고 하는 거야?]
[아니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엄마는 내 인생의 결핍을 3지 선다형 문제로 출제했다. 1번 자신감, 2번 아내의 의사, 3번 경제력. 모든 일에는 이유가 필요한 걸까. 구구절절 내 통장 잔고와 현실 또는 내가 삶아온 삶에 대해서 답안지를 제출하면 정답 처리가 되는 걸까. 의견이 다르면 가정불화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잡음은 필연적이다. 소음은 설명으로 덮이지 않는다.
오늘은 피곤하다. 전기장판을 켠다. 스위치에 불이 들어온다. 온도를 고온으로 올린다.
내가 내 의지대로 켜고 끌 수 있는 건, 이 좁은 바닥의 온도뿐이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