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by 야호너구리

글은 보통 예약돼 있다. 지금 올라가는 글도 지금 쓴 게 아니다. 며칠 전이거나, 어떤 날의 밤이거나, 아직 말이 덜 정리됐던 시간에 적어둔 것들이다. 버튼만 나중에 누른다.


그래서 올라간 뒤에 다시 본다. 꼭 다시 본다. 안 봐도 될 것 같은데 본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이 단어 말고 다른 걸 쓸걸. 이 표현은 별로네. 여기서 왜 이렇게 말했지. 이미 지나간 문장인데, 지금의 눈으로 다시 만진다.


그때의 나는 그 표현이 맞았을 것이다. 그 문장이 그날의 속도였고, 그날의 체력이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 별로라고 느껴지는 건, 글이 틀려서가 아니라 내가 조금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주 많이도 아니고, 설명할 만큼도 아닌 정도로.


예약 글은 항상 한 박자 느리다. 지금의 생각보다 한 칸 뒤에 있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약간의 시차가 생긴다. 과거의 나를 검토하는 기분. 채점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깝다. 아, 저때는 저렇게 말했구나.


수정할 수도 있다. 단어 하나쯤 바꾸고, 문장 하나를 줄이고, 더 나아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지 않는다. 고치면 지금의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글이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시간이 사라진다. 그게 싫다.


아쉬움은 남긴다. 대신 다음 글로 가져간다. 이번에는 이 단어 쓰지 말아야지. 다음에는 저 표현은 피해야지. 그렇게 생각만 하고 넘어간다. 예약된 글은 그대로 두고, 현재의 판단은 현재의 글에만 쓴다.


이 과정의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분명한 점. 조금이라도 예전보다 나아지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잘 쓰겠다는 각오라기보다는, 같은 실수는 덜 하고 싶다는 정도의 마음. 그 정도 변화가 계속 쌓인다.


그래서 내 글에는 약간의 불균형이 있다. 어떤 문장은 지금보다 과하고, 어떤 문장은 덜 정확하다. 마음에 걸리면서도, 그게 이 글들이 실제로 쓰였다는 증거 같아서 그냥 둔다.


완성된 글을 올리는 게 아니라, 한때의 상태를 올리는 느낌. 그래서 다시 보면 늘 아쉽다. 늘 조금 부족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아쉬움이 글을 지우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음 문장을 생각하게 만든다.


예약된 글을 다시 보며 혼자 이야기한다. 이건 별로네. 이건 좀 과했네. 그렇게 말하고 창을 닫는다. 이미 올라간 글은 그대로 두고. 오늘의 나는 오늘의 글을 또 따로 적는다. 이렇게 시간이 쌓인다. 글이 아니라 사람이, 아주 조금씩 앞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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