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휴대폰을 확인했다. 밤사이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었다.
첫 문장은 비교적 차분했다.
“그래. 알겠다.”
“이제 더 이상 얘기 안 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부모 원망하지 말고 후회하지 말고.”
“너거들끼리 잘 살고 집에는 안 와도 된다.”
문장은 길었지만 의미는 단순했다. 관계를 접겠다는 이야기였다. 이어지는 문장은 조금 더 현실적인 계산이었다.
“애기 없으면 돌이 먹고 사는 거야. 어떻게 살거야.”
아이 이야기는 항상 미래 시제로 끝난다. 나중에 누가 너를 돌보겠냐, 늙으면 어떻게 할 거냐, 결국 외로워질 거다. 지금의 선택이 아니라 먼 미래의 후회로 이야기가 이동한다.
그 다음 메시지에서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아빠는 할 말이 없었어.”
“자식이라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지.”
“아빠한테도 모든 것 내려놓으라고 얘기할 테니 너희 둘이 잘 살아라.”
이쯤 되면 대화라기보다는 통보에 가까웠다.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문장과 관계를 끊겠다는 문장이 같은 문단 안에 있었다.
나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애 낳는 거 제외하고는 엄마 아빠랑 늘 잘 지내고 싶어. 그것만 잘 알아줘.”
보내고 나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더 길게 설명할 문장은 떠오르지 않았다.
잠깐의 공백 뒤에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믿었던 자식한테 뒤통수 맞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든다.”
“남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그 다음 문장은 거의 선언에 가까웠다.
“부모하고 아예 상대를 안 하려는 자식들하고 뭔 얘기를 더 해.”
“이제 모든 걸 털고 내려놓는다.”
메시지는 여기서 끝날 줄 알았는데 하나가 더 왔다.
“너거 장모라는 사람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이해가 안 간다.”
대화는 이미 끝난 상태였지만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부모를 우습게 보고 무시하고.”
“여자한테 미쳐서 허락받고 조종하는데 부모하고 의논 한번 해보자는 것도 무시하고.”
“부모될 자격도 없는 놈이다. 진짜 끝이다.”
문장은 거칠었고 띄어쓰기는 들쭉날쭉했다
나는 그 메시지들을 한 번 더 읽었다. 특별한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설명을 붙여도 설명이 될 것 같지 않았고, 사과를 붙여도 사과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휴대폰 화면을 껐다.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언제 부모에게 솔직해질 수 있을까. 어릴 때는 숨기는 게 많았고, 어른이 되면 솔직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오히려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늘어났다.
아이 이야기 하나로 이렇게 됐는데, 다른 이야기를 꺼낼 용기는 쉽게 생기지 않았다.
사실 아직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다. 한 달 전 일이다.
지금은 구직 중이다.
이 이야기를 부모에게 언제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이 이야기를 했을 때도 저 정도였는데 직장 이야기까지 겹치면 어떤 말이 돌아올지 대충 예상이 된다. 예상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을 더 늦추게 된다.
그래서 당분간은 말을 아껴두기로 했다.
대신 기록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