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 전화번호 알려줘

by 야호너구리

카톡을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장모 전화번호 알려줘.”


잠깐 화면을 보고 있었다. 문장이 짧아서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바로 답장은 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깐 다른 일을 하는 척했다. 물을 마시고, 창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다시 휴대폰을 들었을 때도 메시지는 그대로였다.


장모 전화번호 알려줘.


문장은 짧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장면은 길었다. 부모와 부모가 직접 통화하는 장면.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할지, 어느 선에서 대화가 끝날지. 머릿속에서 몇 가지 장면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학교에서 사고를 치면 부모님을 불러야 하는 학생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문제가 생기면 보호자를 호출하고, 보호자끼리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에 누가 잘못했는지 정리되는 구조.


나이가 들면 그 구조에서 벗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가끔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교실만 바뀌었을 뿐이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번호 줘.”


나는 이번에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이건 부모와 부모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내 선택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을 더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휴대폰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메시지 창을 닫았다.


사실 엄마가 내가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성씨 이야기다. 누나가 있지만 누나는 결혼하면 다른 집 성씨를 쓰게 되니 우리 집 자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아이를 낳아야 가문의 이름이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자손을 남기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그 말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의무가 왜 나에게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두 번째는 주변의 시선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집 자식이 아이를 낳았는지 아닌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는 그 부분을 굉장히 신경 쓴다. 내 아들이 애를 낳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주변에 어떻게 보일지를 먼저 걱정한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조카들 이야기다.


엄마는 가끔 조카들이 못생겼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이어간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그런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가 있을까.


가끔은 아이 이야기가 사람 이야기라기보다 게임의 뽑기처럼 들릴 때가 있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그런 확률의 문제처럼.


나는 그 생각이 가장 낯설다.


조카들이 태어났을 때도 처음에는 그렇게 기뻐했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말들이 붙기 시작했다. 얼굴이 어떻다, 누구를 닮았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더 예쁜 아이가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


그걸 들으면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을까.


아이가 없으면 아이를 원하고, 아이가 생기면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얼굴이 어떻다, 성격이 어떻다, 공부는 잘할지, 나중에는 어떤 사람이 될지.


처음에는 그저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조건이 하나씩 붙는다.

나는 그 조건들이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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