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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달 Aug 14. 2023

가정을 지키는 전사의 일기


  3040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똑같이 돈도 벌고 일도 하는데, 어느 한쪽(주로 여자)만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억울하고 싫어서 갈등이 생기다가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 조금도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일방적으로 희생하기 싫은 마음에서 헤어짐에 대한 생각이 싹트고 자라 이혼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두 아이를 양육하며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남편이 나보다 10분이라도 더 자는 거 같으면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한다. 남편이 소화가 잘 안 된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허리가 아프다고 말하면 (그래서 좀 쉬고 싶다는 뜻) 걱정보다 짜증이 먼저 불쑥 솟구친다. 그럼 나는 안 아파? 나는 안 힘들어? 나는 안 쉬고 싶어? 내가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게 싫다.

  어제는 남편에게 고맙고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일기를 썼지만, 그런 글이 나온 게 '남편이 나한테 인간적으로 좋은 걸 많이 해 주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실은 내 사랑의 수준도 이혼을 낳는 이들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듯하다. 나한테 좋으면 좋고, 나한테 안 좋으면 싫고.

  하나님은 우리가 좀 다른 사랑을 배워갈 것을 요구하신다. 세상이 '손해보지 않는 똑똑한 사랑'을 하라고 소리 높여 외칠 때, 하나님은 '기꺼이 희생하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다. '손해보지 않는 사랑'같은 건 없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본전 생각'을 주는 건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다. '네가 더 손해잖아. 네가 더 많이 하는 거잖아. 네가 희생하는 거잖아. 네가 뭐가 부족해서 참아?' 사탄은 희생하는 건 나쁘다고 말한다. 완전한 신이지만 동시에 인간이셨던 예수님도 십자가 지기 싫으셨다. 십자가는 인간 예수로서는 명백한 손해요 하지 않아도 되는 희생이었다. 그러나 십자가는 화해와 생명의 유일한 길이었다.

  덮어놓고 희생하자는 뜻은 아니다. 예수님은 멍청해서 가만히 앉아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니었다. 오늘 내가 배우자의 게으름 또는 단점으로 인해 더 메꾸어야 하는 일손은 명백한 희생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희생뿐이라서 집안일을 더 하는 게 아니라, 그게 희생임을 똑바로 알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 길을 기쁘게 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

  '아버지.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저에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저의 뜻대로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셨던 예수님의 고뇌와 순종으로 속죄와 부활이라는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 저는 제 쉼이나 제 일을 택할 수 있는 시간에 배우자가 그렇게 하게 해 주고 제가 자질구레한 집안일과 육아일을 하는 것이 명백한 희생임을 압니다. 그러나 제가 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 일을 '기꺼이' 할 때, 하나님께서 결국은 가장 선한 길로 우리 부부를 빚어가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고뇌와 순종으로부터 하나님이 기쁨과 회복이라는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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