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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달 솔방울 Aug 02. 2023

환갑 차이나는 연인 사이

마당에 손녀딸 수영장 만들어주기


  연신 폭염 주의 경보 문자가 날아오는 금수산자락. 산 위의 집과 마당에 내리쬐는 햇볕은 여봐란듯이 후끈후끈 의기양양하다. 온 가족이 집 안에서 에어컨 덕을 보는 가운데 하삐는 사우나 같은 바깥에서 홀로 구슬땀, 아니 폭포 같은 땀을 흘린다. 마당에 손녀딸 수영장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아직 잔디를 심지 않은 진흙 바닥에 풀장을 놓을 순 없으니. 종이 상자를 펴서 깔고, 발 닿는 곳에는 스티로폼을 깐다. 그 위에 다시 비닐을 깔아 풀장을 올릴 기초를 다진다.

  얼마 전 온라인으로 야심 차게 구입한 2m x 1m 사이즈의 풀장은 자동 공기 주입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다. AA 건전지를 넣고 버튼을 누르니 순식간에 풀장 완성. 하지만 볕이 너무 뜨겁다. 여기서 놀다간 살갗도 정신도 흐물흐물 벗겨지고 말 거다.

  하삐는 주저하지 않는다. 파이프를 가져다가 연결하고, 그 위에 천막을 씌워 근사한 차양막을 만든다. 안에서 보기엔 뚝딱뚝딱 금세 완성된 듯하나 집 바깥의 시간은 다른 차원인 듯 더디 흐른다. 파이프 하나하나, 천막을 면면히 연결할 때마다 송골송골 생성되는 땀. 노동과 인내의 시간.

  마침내 차양막 있는 풀장 완성이다. 근사하다. 이제 물만 받으면 된다. 우물가에서 긴 호스를 연결하는데, 아뿔싸. 호스가 짧다. 수십 리터는 필요한 풀장. 하삐는 또다시 행동한다. 10L 정도 돼 보이는 물통을 가져다가 우물가와 풀장 사이 수 미터를 오가며 직접 물을 퍼 나르기 시작하는 하삐.

  하삐의 얼굴엔 송골송골, 등과 몸엔 주룩주룩.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 맞은 듯한 땀이 흐른다. 그래도 손녀딸과 눈 마주치면 웃음이 함박함박. 손녀딸과 할아버지. 환갑 차이나는 연인 사이 같다. 그 사랑에 불볕더위도 두 손 두 발 다 든다.

  고모가 가져온 야자수 풀장에 펌프로 공기 넣기까지 해서. 온 가족의 땀과 애정이 담긴, 하삐표 산골 수영장 드디어 개장! 아빠가 넣어 준 수십 개의 물풍선을 조몰락. 고모가 선물해 준 오리 샤워기 장난감으로 물줄기를 쏴아아. 손바닥으로 물 위를 두드리고 물속을 가르며 찰방찰방 쓱 쓱. 아이의 마음 책에 행복의 기억 한 페이지가 더해진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희생,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다. 땀과 힘과 시간을 쏟아 손녀딸의 수영장을 만들어 준 하삐의 행동은 사랑이다.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이기에, 하삐는 행복했다. 더위로 짜증으로 행복을 빼앗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탄으로부터 승리했다.

이 여름, 산골 수영장에서 누린 물놀이 시간의 맛은 '감동'이었다.


우물가
하삐표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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