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달 솔방울 Aug 18. 2023

집밥 하는 주부는 왜 돈을 안 받을까?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돌밥돌밥. 돌나물 비빔밥이 떠오르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말이지만, 밥 하는 작업의 지난함에서 오는 주부들의 애환을 담아낸 웃픈 말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새로운 말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밥' 해 먹으면 또 '요리하고' '정리하고', 밥 먹으면 또 요리하고 정리하고. 밥요정 밥요정 해야 지속 가능한 집밥 생활이 된다.


  누가 주부에게 집에서 밥 '이나' 하라고 했는가. 밥 하는 노동은 밥 '이나' 하라고 낮춰 대우받을 하급 노동이 아니다. 지금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하는 문제 나갑니다.


  냉장고에 새송이 버섯(3송이), 콩나물(2줌), 찌개용 돼지고기(200g)가 남았을 때, 우리 집 먹는 이들의 식성과 영양가를 고려해 이상적인 식단을 짜 보시오.


  지필 평가로 따지자면 객관식 아닌 주관식, 그중에서도 '실전 서술형'에 속하는 최고난도 문제다. 나는 이 문제를 매일 1~2차례 씩 풀어낸다. 어제의 내가 내놓은 답변은 새송이와 콩나물은 소금 친 물에 데쳐 양념장 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찌개용 돼지고기로는 수제 미니 돈가스를 만들어 먹는다. 였다.


짜잔.

미니 수제 돈까스와 새송이 콩나물 비빔밥



내친김에 문제 하나 더 나갑니다.


  말복에 먹은 백숙 닭고기가 꽤 많이 남았다. 그냥 먹자니 질리고 버리자니 아깝다. 집에 있는 재료만으로 질리지 않으면서 영양가도 잡는 식단을 짜 보시오.


  나의 답변은, 양파를 채 썰어 볶다가 백숙 고기 넣고 단짠 간장 양념에 졸인다. 계란 2-3알을 풀어서 쪼르륵 부어 익힌 뒤 갓 한 밥 위에 올려 오야꼬동을 내놓는다. 였다.


짜잔.

오야꼬동


  똑같은 문제를 받아도 답변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답이 나오는 열린 문항이다. 열린 문제가 가장 어려운 문제다. 당신이 명문대를 나왔다고 해도,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위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매일 실물로 내놓으며 사는 일상이 만만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그대가 성취주의자라면 밥 하는 일상이 즐겁게 느껴지기는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당장의 성과라고는 가족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좋은 똥을 잘 눈다, 정도니까.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교단에 서 보았고, 글도 써 보았다. 영상을 만들어 보았고, 장기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다. 그리고 요새 가장 중심적으로 하는 일은 집에서 밥 하기다. 집에서 밥 하는 노동은 그 가치와 난이도를 따지자면 지금까지 내가 하며 살았던 것들 중 최상위, 최고급에 속하는 노동이다. 어렵고 힘들어서 최고난도, 동시에 다른 어떤 일보다 가치 있고 중요해서 최고등급.


  집밥 하는 주부는 왜 돈을 안 받을까?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치 없는 일을 하기 때문에 월급을 못 받는 걸까? 아니다. 주부가 집밥을 하는 것에 대한 보수를 돈으로 따져서 주려고 한다면 얼마를 줘야 할까? 다음과 같은 요소를 따져서 금액을 책정해 보자.


  집에 있는 재료를 낭비하지 않으면서 남기지도 않게, 그러면서 영양가 있게 식단을 짜는 데 투입되는 양감과 계산력 및 창의성(두뇌 풀가동). 재료 손질, 칼질, 물질, 볶음질이 요구하는 근력과 힘 조절 능력,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애정의 진정성(사랑이 없다면 곤욕이 따로 없을 육체, 감정 노동).


  웬만한 대기업 연봉을 준다 해도, 그 푼돈(고생에 비하면 푼돈이 맞다.) 받자고 이 고생을 매일 기꺼이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어쩌면, 돈을 많이 준다고 하면 당분간은 좋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점차,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을까.


  한 할아버지가 집 앞의 공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도 시끄러워 혼도 내 보고 달래도 보았는데 어떻게 해도 아이들이 매일 와서 놀아 시끄럽더랬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여기 와서 놀면 매일 2달러(?)씩 준다고 했다. 아이들은 신나서 용돈을 받으며 놀다 갔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돈이 떨어져서 이제 여기서 놀아도 돈을 줄 수 없다고. 아이들은 실망하여 다음부터 다시는 공터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의 교묘한 수가 통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노는 게 즐거워서 놀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용돈이라는 수단을 도입해, 아이들이 돈을 받기 위해 노는 것으로 그 동기를 바꿔버렸다.


  돈을 받고 밥을 한다면, 가족을 위한다는 순수한 동기가 돈을 받기 위해 하는 '일'로 뒤바뀔 수 있다. 주방 알바보다 주부가 즐거운 이유는? 주방 알바는 목적의 큰 부분이 돈 이지만, 집밥 만드는 주부는 그 목적이 가족을 사랑함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가치가 돈을 벌기 위함으로 바뀌면, 밥 짓는 이는 사랑으로 밥을 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빼앗길지도 모르겠다. 놀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만 아이들처럼.


  기뻐서 하는 거다. 사랑해서 하는 거다. 바보라서가 아니라 '사랑하니까' 돈을 주지 않아도 기꺼이 고생을 하는 거다. 원래 가장 소중한 건 공짜다. 돈을 받는 순간 그 까닭이 돈 때문이 되어버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인류의 구속 사건 복음도 공짜가 아닌가.


  내 새끼와 내 사랑 입으로 건강한 음식이 들어간다는 안도감. 내 손으로 내 식구들 건강을 책임진다는 책임감. 초고물가 시대에 외식과 배달 음식에 쓰는 돈을 아껴 다른 필요한 곳에 쓸 수 있게 가정 경제에 기여한다는 뿌듯함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마음들이 이 고생을 매일 기꺼이 할 단단한 까닭이 된다. 나는 그렇다.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계속해서 밥 해 먹이는 일이 지겹고 힘들다는 데서 돌밥돌밥이라는 말이 나왔으리라. 그러나 그대는 돌밥돌밥을 견뎌내는 그저 그런 주부가 아니다. 대기업 아니고 의사 연봉을 준대도 안 할 만큼 어렵고 힘든 작업을 매일 같이 창의성과 사랑을 담아 해내는 불가사의한 존재다. 밥 하면 바로 또 요리하고 정리하고. 밥 하면 바로 또 요리하고 정리하고. 사랑으로 그 일을 감당해 내는 모두를 나는 밥요정이라는 신비로운 호칭으로 부르고 싶다.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이다. 오늘도 주방에서 손에 물을 묻히고, 그 작업의 지난함에 눈물을 삼키며 자기 분량의 십자가를 지는 당신의 손과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이 포개어진다.



2023.8.17. 목.



매거진의 이전글 심란한 풍경이 꼭 내 마음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