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30일 토요일
전세 구하기도 어려운 요즘 같은 세상에 ‘내 집’이 생겼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집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던 마음은 곧 잦아들었다.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부터 내 마음은 집을 요리조리 바꿀 궁리에 들뜨기 시작했다.
'전세'가 '자가'로 변하면서 집에 부분 시공, 가구 리폼 따위가 가능해지자, 집안일 해방 3대 이모님 중 한 분이라는 식기 세척기를 꼭 들이고 싶었다. 그랬다가, 어차피 가구 리폼까지 하며 새 가전을 들일 거라면 이왕이면 주방을 대대적으로 손 보는 건 어때, 생각했다. 응? 왜 하필 주방을? 전업 주부도 아니면서, 주부의 로망이라는 예쁜 주방을 갖고 싶기라도 한 거야?
분위기 좋은 주방에서 요리하며 기뻐하는 현모양처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사람이라서 내 마음에 드는 예쁜 부엌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육아휴직 중인 나는 '살림'보다 '내 일'을 하는 게 더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어쩐지 음식을 사 먹기보다 해 먹는 빈도가 높아졌다. 책임질 존재가 생겨서 그런가, 가족들이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고 건강한 게 중요하다. 위장이 예민한 남편이 바깥 음식 먹고 탈 나는 일도 좀 줄면 좋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하루 풍경의 대부분은 부엌이 차지한다. 휴. 그럼 주방이 예쁘기라도 해야 밥 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만족스러워지지 않을까?
지금 부엌이 근데, 그렇게 별론가? 뭐가 별로인 거지? 가구 배치? 색깔? 조명? 전체적인 틀이 괜찮다면 굳이 구조까지 바꿀 필요는 없다. (이미 괜찮은 구조를 굳이 바꾸는 건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아깝다.) 현재 구조에 만족한다면, 100만 원 안팎 정도 예산을 들여 주방 가구 필름 작업을 해서 색감만 바꾸어줘도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필름 작업을 해볼까? 아니. 나는 어쩐지 우리 집 부엌을 구조부터 뜯어고치고 싶다. 이유가 뭘까. 나는 왜 우리 집 주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나.
우리 집은 34평의 판상형 아파트다. 부엌이 발코니 확장형 거실과 한 실로 트여있어 개방감이 드는 구조다. 평수 대비 주방이 좁은 편도 아니다. (약 16제곱미터 4.9평)
그런데도 부엌 및 다이닝 공간의 인상이 다소 불편하고 답답했다. 커다란 냉장고가 입구에 툭 튀어나와 있기 때문이었다. 냉장고와 개수대, 쿡탑을 기역 자나 디귿자로 할 만한 여유가 있는 공간인데도 이들을 1자로 배열한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련된 갈색도 따뜻한 밤색도 아닌 투박한 고동색의 하부 장 색깔도 맘에 걸렸다. 그 색을 '차분하고 좋다'라고 받아들이기엔 나는 아직 철들지 않았나 보다.
고치려들고 보니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하고 싶었다. 식기 세척기에서 시작된 주방 리모델링 바람이 씨앗이 되어 마음에 심기자, 행동 개시라는 싹이 움텄다. 나는 인테리어 실전 정보가 많기로 유명한 카페에 가입하고 인스타, 핀터레스트, 카페, 구글, 오늘의 집 등 여러 채널을 통해 마음에 드는 주방 이미지를 모았다. 한편 주방 구조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조사하면서 엿보는 남의 집 주방은 하나같이 쾌적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눈에 불을 켜고 온라인을 샅샅이 뒤졌지만 ‘살면서’ 리모델링을 추천하는 사람은 없었다. 입주 전처럼 집을 비운 상태여야 어디를 뜯어고치든 말든 한다는 거다. 거실만 바꿀 거라서 방 하나에 틀어박혀 지내며 공사를 했다는 후기가 하나 있었지만,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라는 말과 함께였다.
살고 있는 집을 집을 비운 상태로 공사를 하려면 보관 이사를 해야 한단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사 들어가기 전에 리모델링을 한다고. 나는 비용을 찾아보다가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보관 이사에 드는 비용만 몇백, 업체를 끼고 취향껏 집을 바꾸려면 드는 비용은 몇천이었다. 이 집이 ‘자가’로 표시될 수 있도록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기도 빠듯한데(아니, 벅찬 것일 수도) 리모델링에 몇천만 원을 더 들일 수는 없었다. 기적처럼 생긴 내 집을 더 쾌적하게 만들고픈 부부의 부푼 마음은 날카로운 현실에 긁혀 바람이 새기 시작했다.
바람 빠지는 마음이 너무 납작해지기 전에 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렵더라도 길은 있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만, 때로는 어려운 줄 알면서도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내 마음이 택한 길은 '살면서(보관이사 없이)', '반셀프(직영 공사)' 리모델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