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보통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 아파트 동 입주민한테 ‘공사 동의서’ 동의 서명을 받거나 ‘공사 양해 편지’를 드린다. 아파트마다 사람마다 인테리어 업체마다 진행 방식이 다른 듯했다. 공사 담당자가 ‘업체’인 경우, 민원이 커져 소송이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주로 ‘공사 동의서’를 받는다. 업체를 통해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면 업체에서 공사 동의서를 받아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업체에 내는 비용에 이런 서비스 비용도 포함된다.
우리 집 공사 담당자는 ‘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여쭤보니 공사 안내문을 공동 게시판과 엘리베이터에 게시하면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포털 사이트와 셀인 카페에서 ‘공사 안내문’과 ‘공사 양해 편지’ 예시를 찾아본 뒤 우리 집 상황에 맞게 다시 작성했다. 집에 프린터기가 없어서 손글씨로 썼는데, 양해를 구하는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기에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손글씨로 쓴 안내문과 양해 편지를 관리사무소에 가져가니 복사를 해 주셨다. 복사한 공사 안내문을 공동 게시판에 하나, 엘리베이터 게시판 하나 붙이고 집에 돌아왔다. 유모차에 타고 있는 딸은 내가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엄마랑 밖에 자주 나가니 코에 바람이 들어 즐거워하는 모양이었다. 저녁 6시였다.
이제 이웃에 양해 편지를 돌려야 하는데, 빈손으로 드리긴 좀 그랬다. 12개월 된 딸을 데리고 아파트 정문 쪽 노브랜드에 들러 손 소독 티슈와 작은 스낵류를 5개씩 샀다. (위층 2개 집, 아래층 2집, 옆집 1집) 선물을 담을 포장 가방도 필요한데 그건 노브랜드에 없었다.
근처 다이소에 포장 가방을 파는데, 그곳엔 물건들이 몽땅 2층에 있고 엘리베이터가 없다. 1층에 유모차를 세워두고 아기를 안고 2층에 가서 종이가방을 가져올까 했지만 포기했다. 1층 출입구까지도 3~4개의 계단이 있어 유모차 출입이 어려웠을뿐더러, 갓 장본 과자와 손 소독 티슈가 여봐란듯이 들어있는 유모차를 그냥 세워두기도 찝찝했다.
나는 다시 유모차를 끌고 아파트 정문을 지나 아파트 후문 쪽에 있는 GS편의점까지 가서야 겨우 포장 가방을 살 수 있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생각났다. 열 개까지는 아니고 몸이 세 개만 되어도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하나는 공사 준비하고, 하나는 딸과 놀아주고, 하나는 실컷 잠도 자고 말이다. 살면서 보관이사 없이 반셀프로 집을 뜯어고친다는 건 수면 부족과 입병에 시달리는 날들과 친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기와 함께 여기저기 쏘다닌다고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듯했다. 집에 돌아오는 유모차에서 딸은 곤한 조각 잠에 빠졌다. 나도 한잠 청하고 싶었지만, 낮에 보고 온 허름한 숙소를 계약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하고, 주방의 짐도 빼놔야 했다. (기존 옷방의 옷을 어제 설치한 붙박이장에 넣고, 주방 짐을 기존 옷방에 넣는 작업) 벼락치기하는 수험생보다 더 똥줄 타는 심정이었다. 주방 세간살이들은 내 마음도 모른 채 너무나 평화롭게 쉬고 있었다. 주방 철거, 내일 정말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