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아침 7시 30분. 예상보다 이른 시각에 붙박이장 설치 팀장님이 문을 두드렸다. 도착 30분 전쯤 전화 통화를 할 때 그는 작업 장소가 당연히 빈 집일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붙박이장 설치하고 갈 테니 집 비밀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심지어 돌쟁이 아기까지 있었다.) "그런 적은 없었는데.." 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붙박이장을 설치할 안방 모습이다. 커튼도 채 떼지 못했는데 설치 팀장님이 도착했다. 곧장 작업에 착수할 포스로 미루어보아, 장 설치하러 오면 그때 침대 빼도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6시에 일어나 미리 침대를 빼 두길 잘했다.
현관부터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까지 깔개가 깔렸다. 내복, 잠옷을 입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작업복에 운동화인가 워커를 신고 다니던 설치 팀장님의 모습이 엄청난 이질감을 형성하며, 우리 집은 공사장도 생활공간도 아닌 그 사이의 무언가가 되었다.
이윽고 붙박이장 조각들(?)이 들어온다. 팀장님은 레고를 조립하듯 착착 조각들을 쌓아간다. 8시 반 정도 되었나. 나는 벌써부터 언제 끝날 것인가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금방 끝나요.였나, 시간이 좀 걸리지요.였나, 반나절이면 돼요.였나... 설치 팀장님의 말씀을 가이드라인 삼아 희망을 갖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벽면에 붙박이장이 착착 들어가고 나니 그때부터 본격적인 소음이 들리고 집안에 분진이 날리기 시작했다. 이 이 이 이잉~ 지 이이이 잉~ 치이 이이 이 이익~ 큰일이다. 붙박이장 설치는 따로 공사 안내문을 게재하지 않았는데... 양해 안내문은 10월 23일 토요일 하루 전인 내일 게재할 계획이었다.
거실 구석 창가 쪽으로 밀려난 아기는 나무 블록을 갖고 놀다가 이게 웬 난리인가, 생각하는 듯하다. 피곤해진 딸이 낮잠을 잘 때까지도 (=설치 팀장님과 실장님 점심시간) 소음과 분진을 동반한 붙박이장 설치는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애가 탔지만, 이미 시작된 걸 어떡하나. 설치하고 난 후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작업 도중에 나는 계속해서 거실 바닥, 책장을 닦았다. 닦는 족족, 닦아도 닦아도 물티슈에 황토색 먼지가 계속 묻어 나왔다. 아기와 나의 호흡기는 안녕한 걸까? 오 주여.
어른 침대는 주방에 꺼내 두었고, 아기 침대는 (먼지 날리고 시끄러우면 낮잠을 못 잘 테니까, 조금이라도 공사판과 분리된 공간으로) 옷방에 넣었다. 거실에 꺼내 두었다가 소음과 분진에 깜짝 놀라 옷방에 급히 넣은 아기 침대는 대각선으로 구겨져 들어가 있었다. 밖에서 설치 팀장님과 실장님이 중국집 배달음식을 드시는 동안 나는 아기 침대 안에 구겨져 들어가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잠을 청했다. 곧 설치가 끝나리라, 곧 끝나리라. 생각하며.
오후 2시가 채 안되어 설치가 끝났다. 할렐루야. 그러나 나의 2차 작업은 지금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보관이사 리모델링을 했다면 다른 공사들까지 끝난 후에 입주 청소를 하면 될 일이지만, 우리 가족은 오늘 당장 이 방에서 잠을 자야 한다. 설치 중에 발생한 분진들과 한 판 전투를 치러야 했다.
문틈, 창틀 사이사이를 두꺼운 테이프로 막아 놓았었다. 귀찮았지만 해 놓길 매우 잘한 작업이었다. 밀대로 밀고 또 밀어도 먼지는 좀처럼 사라질 줄 몰랐다. 안방과 거실, 주방 모든 곳에 먼지가 있었다. 바닥과 구석구석의 먼지를 다 닦아낸 후엔 대망의 붙박이장 먼지 닦아내기가 남아 있었다. 저 예뻐 보이는 붙박이장 겉모습 안에는 수없이 많은 톱밥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돌쟁이 딸은 엄마가 뭘 하는 게 재밌어 보였는지 자기도 돕겠다는 듯 물티슈를 들고 옷장에 달려들었다. 아기 데리고 이게 웬 사서 고생인가. 하지만 아기가 있기에 이 고생을 견딜 수 있기도 했다. 딸과 함께한 붙박이장 설치 날은 잊지 못할 시간의 페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