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일~
2021년 9월 초
구조도와 무드 보드를 통해 리모델링 방향성을 구체화하다 보니, '그럼 가구는 어디에서 주문하지?'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포털 사이트와 각종 인테리어 커뮤니티를 드나들며 찾아보니, 주방 가구를 다루는 업체 이름이 주르륵 나왔다. 우선 좋은 후기가 많은 업체들을 추려 보았다. 그러나 아기가 있는 우리 집에 설치할 가구는 '많은 양의 만족스러운 후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그건 바로 '친환경 자재 등급 E0 이상'. 나는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독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는 안전한 등급의 자재를 사용하는 가구를 원했다.
한샘이나 이케아처럼 나름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는 친환경 등급 E0 이상인 자재로 가구를 만든다. 그 외에는 E1 등급의 자재를 사용하는 업체들도 많다. 나는 E0 이상 자재 등급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가구 업체를 다시 찾았다.
한샘처럼 대중적인 브랜드의 가구를 우리 집 구조에 맞게 설치하려면? 해당 브랜드 전시장에 방문해서 전문가 상담을 받으면 된다. 대중적이진 않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키친앤코, 태산싱크 등과 같은 업체도 전문가나 매니저에게 상담을 받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대중적인 브랜드든 아니든 '상담 비용'이 추가되면 견적이 비쌀 것 같았다. 카페에서 추천하는 업체들에 상담을 받아보기도 망설여졌던 이유다.
차라리 상담 비용도 가구 비용도 횟수나 규격에 따라 정찰제로 값이 정해져 있는 이케아가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케아 주방 하면 '이국적이고 개성 있는 예쁜 주방'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도 이케아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다. 내 기준에 예뻐서, 자재 등급이 안전해서, 맞춤형으로 진행해도 부풀린 견적을 받을 위험이 없어서. 이 세 가지 이유로 나는 이케아에서 주방 가구를 주문하기로 했다.
2021년 9월 6일 월요일
이케아 고객센터 대표번호(1670-4532) 전화를 걸면 자동 안내 멘트가 나온다. 쇼핑과 플래닝 관련 문의 3번을 누르고 상담 직원과의 연결까지 걸리는 시간은 때에 따라 다르다. 11개월 된 아기가 아직은 낮잠을 2번 자 주는 덕분에 아기 낮잠 시간에 전화를 하면 상담 직원과의 연결을 마음 편히 기다릴 수 있었다.
예상외로 짧은 시간 안에 상담 직원과의 연결에 성공한 나는 주방 실측 플래닝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상담 직원이 '네 고객님'하고 바로 날짜를 잡아주면 좋으련만 과정이 번거로웠다. 상담원이 나의 이름과 연락처, 주소지를 주방팀에 전달하면, 주방팀에서 나한테 다시 전화를 할 텐데, 그때 전화를 받아서 자세한 일정을 정하는 절차였다. 이케아는 절차가 복잡하다더니 정말 그랬다.
집안일을 하거나 아기를 돌보다가 걸려온 전화를 놓치기라도 하면, 다시 전화를 걸어 자동 안내 멘트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오롯이 반복해야 한다. 아기가 자고 있는 지금 바로 일정을 잡으면 좋겠는데 통화가 끝나고 곧바로 (5분 안에) 전화를 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1~2시간 안에 최대한 빨리 연락 달라고 메모 전달은 해드리겠지만, 요청한 만큼 빨리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기가 깰까 봐 휴대폰을 무음 무진동으로 해놨기 때문에 전화가 오는지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어야 했다. 다행히 10~15분 안쪽으로 전화가 왔고, 9월 11일 토요일 오전 11시로 실측 플래닝 날짜를 잡았다. 실측 플래닝은 12만 원이 드는데, 플래닝 후 실제 가구 설치까지 하면 그 비용은 이케아 포인트로 환불해준다.
2021년 9월 11일 토요일
오전 11시경 이케아 주방 플래너가 도착했다. 우리는 무척 우왕좌왕했다. 전날 아기를 재운 뒤 새벽까지 구조를 고민하다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을뿐더러, '이거다!'싶은 답을 정하지도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몽롱하고 우유부단한 부부를 상대하며 주방 이곳저곳을 실측하던 플래너는 마침내, '그래서 어떤 구조를 하실지 결정을 해 주셔야 오늘 예정된 플래닝 시간 안에 다음 단계로 진행이 가능하다'라고 압박을 주었다.
우리는 쿡탑은 그대로 두고, 개수대를 대면형으로 꺾는 구조를 택했다. 쿡탑 위치를 바꾸는 게 되게 어려운 줄 알았다. 후드의 흡입력이 떨어질 것 같기도 했다. 후에 공부하며 알게 됐다. 실상은 개수대 위치를 바꾸는 게 위험부담이 더 큰 일이라는 것을. 배수로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물이나 잔 음식물 찌꺼기 배출이 원만하지 않아 물이나 냄새가 역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송이 상태로 상담받은 1차 플래닝 결과, 주방이 반토막 났다. 주방을 정말로 이렇게 할 거야? 후회할 것 같은데? 플래너가 퇴근한 후 신랑과 나는 심각한 회의를 했다. 딸이 배고프다고 칭얼댄다. 전날 밤늦게까지 아이패드와 줄자를 붙들고 리모델링 생각만 하며 설치던 초보 엄마 아빠는, 아침에 아기 먹일 밥도 안 해놔서 돌도 안된 딸한테 햇반과 냉동 닭가슴살을 급히 데워 먹였다. 정말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