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이케아 가구 설치 가이드라인이다. 타일선은 바닥 마감에서부터 75cm를 기준으로 수평을 맞추어 붙여주세요.라고 안내되어있다.
타일공이 도착하기 전, 나는 목공 가벽 작업이 끝난 벽면에 다가가 바닥에서 75cm가 되는 지점에 정성스레 표시를 해 두었다. 원목 상판이 설치될 92cm 높이와, 상판으로부터 타일로 뒤덮일 70cm 높이(92cm+70cm)에도 표시를 했다.
이런 표시를 하는 이유는, 타일이 시공된 후의 모습이 어떨지를 예측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시공 후에 작업이 잘 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체를 끼고 하는 공사라면야 타일을 고르고 대략적인 스타일을 전달하면 자세한 치수까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업체에서 알아서 해결할 테니. 하지만 반셀프 리모델링(직영 공사)의 디자이너이자 총책임자는 집주인인 나 자신이다. 나 외에는 아무도 공사 결과를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에 다소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돼?' 하는 것도 신경을 써야 실수나 후회가 적다. (하지만 그렇게 최선을 다해도 실수는 발생한다.)
공사 약속 시간 10분 전인 9시 50분. 타일 시공자가 도착했다. 부모님은 임시 숙소에 건너가서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고, 나는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기를 아기띠에 안은 채로 타일공과 작업 내용을 확인했다. 간단한 확인 후 그는 신속하게 작업에 착수했다. 세라픽스를 벽에다가 탁 탁 탁 탁. 거침없는 손길이었다.
오전 10시 7분. 임시 숙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딸은 노곤노곤 잠에 빠졌다.
20만 원이라는 작업비가 무색하게 타일공은 작업이 1~2시간이면 끝난다고 했다. 작업을 마쳤다는 연락을 받고 가 보니, 아뿔싸. 상판 위쪽 벽으로 빼서 쓰려던 전기 콘센트가 너무도 애매한 위치에, 너무도 투박하게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가구를 설치할 때 상판 설치면과 꼭 겹칠 것 같은 위치였다. 목공 파트에서 가벽에 구멍을 뚫어 전선을 빼낼 때 그 높이를 더 낮추어 빼 달라고 요청했어야 했다. 타일면 사이로 빠져나온 저 전기선을 예쁜 콘센트로 처리해도 되었겠지만, 예상치 못했던 사태와 보기 싫은 모습에 당황하여 나는 저 전기 선을 가벽 뒤로 넘기고 구멍을 타일로 덮어달라고 했다.
작업은 20분 만에 끝났다. 나는 전기선 하나를 죽이고 깔끔해진 타일면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곱씹어보는 뒷맛은 아쉽고 찝찝하기도 했다. 저 전기가 살아있다면 벽면에 예쁜 조명을 쉽게 설치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오후 12시 40분. 점심밥을 먹으러 임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가로수의 붉은빛이 태양을 담은 듯 영롱했다. 가을을 따라 내 마음도 익어가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도 일단 나아가자. 오늘의 나는 최선을 다 했다. 그거면 되었다.
오후 2시 무렵. 전기 기사님이 방문하여 벽면의 전기선을 콘센트 처리해 주었다. 상판과 높이가 겹치지 않을지, 60cm장과 80cm장이 설치되는 사이의 패널에 콘센트가 겹치지 않을지를 꼼꼼히 확인했다. 콘센트 근처에 뚫린 구멍들이 기존 전기선의 위치다. 가구 설치 시 상판이나 패널과의 간섭을 막기 위해 콘센트의 위치가 기존에 뚫어둔 전선의 위치와 달라졌다.
공사 1년 후 아일랜드 식탁 아래쪽 모습이다. 아뿔싸. 가구가 들어오던 날 깨달았다. 타일과 마루 등은 도면을 참고하여 벽과 바닥이 노출되지 않도록 미리 시공해주세요.라는 이케아 가구 설치 가이드라인을 간과한 결과, 아일랜드 식탁 아래쪽에 타일이 뚝 끊겨 도배한 벽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벽 끝에서 30cm 정도는 타일을 바닥까지 내려서 시공해야 했다.
올해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깊어간다. 성실하게 무르익어가는 나무들을 따라 내 마음도 성숙해간다. 실수는 좋은 거다. 낯선 분야를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는 도전의 증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