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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달 Oct 28. 2022

주방 가구 들어오다: 수전, 후드 셀프 설치

2021년 11월 3일 수요일~


 

싱크대 가구와 조명

이케아 주방 설치중
가구 설치를 마친 날 밤 한 몸 불태운 걸레의 모습

2021년 11월 3일 수요일. 이케아 가구가 들어왔다. 설치팀이 설치를 하는 동안 가족들은 임시 숙소로 피난(?)을 떠나 있었다. 돌아와서는 엄청난 먼지 구덩이 속을 헤치고 셀프로 입주 청소를 했다. 도배, 목공 등의 공정이 끝날 때마다 해오던 거다. 그럼에도 그 고된 노동은 언제 해도 참신하도록 지겹고 새롭게 힘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갈아가며 방에서 딸을 봐주시는 동안 나와 남편은 청소기와 밀대, 걸레로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닦아도 닦아도 먼지가 계속 나왔지만 그래도 신이 났다. 이제 가구가 들어왔으니, 진짜 다 끝난 거라고 스스로를, 서로를 토닥이면서.



2021년 11월 4일. 레일 조명을 설치하고 식기 세척기와 인덕션도 들어왔다. 전문가를 섭외해서 하는 공정은 이제 다 끝났다. 2주간 빌렸던 임시 숙소의 짐도 뺐다. 이제는 새 주방에서 밥을 짓고 요리를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나. 공사는 끝났지만 수전이 설치되지 않아 쌀을 화장실에서 씻어야 했다. 이케아 수전이 아닌 다른 수전을 준비해두었더니 설치팀에서 설치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설치를 해줄 수도 있는데, 하필 우리가 고른 수전은 우리가 고른 상판에 설치하기 무척 까다로운 스펙을 갖고 있었다.



수전과 후드 셀프 설치


우리가 타공 사이즈만 맞춰서 산 수전은 다로스 4100이다. 상판 통과용 나사 부분 길이가 약 3.4센티다. 우리가 최종 선택한 주방 상판은 묄레쿨라로서 그 두께가 4센티다. 나사의 길이보다 상판의 두께가 더 두껍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한 수전은 묄레쿨라 상판에 설치가 불가합니다.라는 이케아 설치팀의 판정에 나는 당황했다. 어떤 수전은 나사가 5센티라서 묄레쿨라 상판에 설치 시도를 해볼 수도 있다는데. 난 나사 길이 그런 건 전혀 몰랐기에 그저 예쁘고 타공 사이즈(36파이)만 맞으면 되는 줄 알고 그런 수전을 사두었을 뿐이다. 예쁜 주방 설치해 놓고 왜 쌀을 씻지 못하니.


상판 위쪽
상판 아래쪽. 금색 나사(숫놈)가 암나사를 기다림.

손 놓고 있던 나를 대신해 남편이 나섰다. 준비물은 구멍 뚫는 톱(hole saw) 36파이, 38파이 각 1개, 홀쏘 설치용 전동드릴. 상판 설치하고 남은 조각에 연습을 해 보았다. 상판 위쪽은 구멍을 36파이로 타공 하고(2cm 깊이, 수전 고정용 타공 사이즈), 상판 아래쪽은 구멍을 38파이로 타공 한다.(2cm 깊이, 수전이 고정되지 않음.) 계단이 생긴다. 2센티 두께의 상판에 깊이 3.4센티의 나사로 수전을 고정하는 셈이다. 38파이 타공 된 공간으로 수전 나사 암놈을 끼워 고정한다.

신랑 덕분에 설치한 수전


그런데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후드를 달지 않아서 냄새나는 요리를 해 먹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가구가 들어왔음에, 쌀을 싱크대에서 씻을 수 있음에, 공사가 끝났음에 신이 났다. 야호! 야호!


2021년 11월 11일. 신랑은 아버지와 함께 아일랜드 후드를 설치했다. 레이저 수평계까지 꺼내 들고 각을 잡는 부자의 모습이 근사했다. 후드 내 소방 설비는 기사를 불러 따로 설치해야 한다.


덕분에 드디어 근사한 주방이 완성됐다.


중문 시공

  2021년 12월 8일. 중문을 시공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좋은 후기가 많은 업체, 질리지 않을 심플한 디자인을 선택했다.(문선생도어, 619000원) 겨울철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실내 온도를 유지해주는 효과가 톡톡하다.


  새 주방에 서면 황홀했다. 아기가 잘 때 이동식 티브이 거치대를 가지고 와서 영화를 보는, 영화 같은 풍경을 즐기기도 하고. 요리하는 사람과 밥 먹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대면형 주방의 로망도 실현했다. 그런데 나는 처음에 주방 리모델링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와 고민을 기억하고 있나? 주방이 예뻐져서, 정말로 이곳에서 밥을 더 자주 해 먹나?


  살면서 리모델링을 마치고 2개월이 됐을 즈음 나는 '오늘의 집'에 온라인 집들이를 발행했다. 그리고 리모델링을 결심했던 초심(매일의 일상을 감사하며 지내기, 사 먹지 않고 건강한 음식 해 먹기)을 잃고, 집을 자랑하기에 바빠졌다. '주방이 너무 예뻐요~'. '부러워요~'라는 댓글 사이로 인테리어에 대한 질문이 달리곤 했다. 나는 친절이라는 컨실러를 바르고 자세히 답글을 달았지만, 친절에 가려진 내 마음의 민낯은 좀 더 많은 댓글과 관심에 기뻐하는 관종의 자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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