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위의 상상
어설프게 짚는 건반 위에서도 ‘화음’이란 것은 일어난다. 건반의 물리적 움직임과 현들의 울림을 통해 만들어진 이 소리는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화음의 창조자는 연주자인 인간일까, 아니면 이를 듣는 인간들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들어놓은 신일까.
검은건반과 흰건반을 바라보면서 떠올린 노래가 있다. ‘Ebony and Ivory’ 검은색과 흰색 건반의 피아노 이미지가 모티브가 된 노래로 1982년 영국의 백인 가수 폴 매카트니 (Paul McCartney)와 미국의 흑인 가수 스티비 원더 (Stevie Wonder)가 함께 부른 노래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참 젊었던 두 양반이 검은색과 흰색이 배합된 옷을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다정하게 노래 부른다. 피아노의 검고 흰건반의 어울림을 흑인과 백인의 화합이라는 의미로 확장시키고 있다.
커다란 검은건반에 걸터앉은 흑인이자 시각장애인인 스티비 원더를 향해 흰건반 위를 걸어오는 백인이자 비장애인(처럼 보이는) 폴 매카트니의 모습이 당시 다수자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의심을 부르긴 했지만…. 영상 도입부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는 매우 상징적인 액션도 폴 매카트니의 몫이었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가사의 일부는 이렇다.
Ebony and Ivory live together in perfect harmony
Side by side on my piano keyboard, oh lord, why don’t we?
We all know that people are the same wherever you go ……
폴 매카트니는 애초에 스티비 원더와의 듀엣을 염두에 두고 곡과 가사를 지었다. 노래 발표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 인종갈등이 여전했던 사회상의 반영이면서 동시에 자성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40년 전 피아노 앞에 앉은 너무도 유명했던 가수는 인종 간의 조화를 사유했다. 2021년 ‘흑백의 하모니’는 더 세심한 상상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인간과 자연, 부자와 빈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성과 여성,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서울과 지역, 정규직과 비정규직, 젊음과 늙음, 금수저와 흙수저, 갑과 을 등….
피아노가 울리는 화음이 언뜻 세상의 불협화음들을 떠올리게 한다. 두 팔 벌린 크기의 희고 검은건반 위의 세계가 큰 세상을 품고 있다고 느껴진다. 낯설다. 피아노는 무엇인가.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ya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