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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 Mar 06. 2021

천하의 조성진도 피해가지 못했을…

<비행기>를 치면서

가사가 없는 악보를 보고 긴가민가했다. 내가 아는 그 <비행기>인가. 음을 하나씩 짚는다. “미… 레… 도… 레… 미미미…” 맞았다, 그 비행기. 계이름도 왠지 입에 착~ 달라붙는다. 쳐본 적도 없는 <비행기>인데 이 곡이 ‘미레도레미미미’로 시작해 ‘레레레 미솔솔’로 이어지는 계이름을 희한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 안의 기억은 어쩌다 엮이게 된 피아노와의 인연을 예견한 사소한 복선이 아니었을까.     


피차 간단하게 편곡된 곡이지만, 앞서 쳤던 바흐의 <뮤제트> 같은 허영과 가오냐, <비행기> 같은 간결하고 익숙한 동요냐? 양자택일을 묻는다면 난 <비행기> 쪽이다. 피아노를 배운다면 칠 수밖에 없는 곡이 아니던가. 게다 노래까지 부를 수 있지 않은가. 여전히 낯설기만 한 동네에서 옛 이웃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었다.   

양손 다섯 손가락 모두 사용하는 훈련이다. 여전히 느리고 느슨한 박자의 연습은 이어진다. <비행기>로 시작해 <바이엘 23번>까지. <비행기>처럼 흥얼거릴 수 있는 익숙한 박자의 곡은 좀 나은데 4분 음표와 2분 음표 등의 길이와 호흡은 감감하다. 음표의 길이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다. 4분 음표는 “따”, 2분 음표는 “따안” 온음은 “따아아안”이라는 설명이다. ‘0.5초’ ‘1초’ 같은 약속된 절대적 시간이 아니라 상대적인 시간이라는 것인지, 새삼 궁금하다. “따안”이라는 호흡이 얼추 비슷하게 들려도 연주하는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 않은가. 초보라 굳이 설명하지 않은 걸까. 


계이름을 짚어가는 둔한 손가락들을 신경 쓰면서 박자까지 챙기기가 버겁다. 경쾌해야 할 곡들이 박자가 늘어지면서 ‘슬픈’ 곡이 되고 만다. 얼마 전 더듬거리며 건반을 누르고 있는데 ‘무슨 곡인가’ 집중하던 딸내미가 (비)웃었다. “그게 그 노래였냐”며 답답해했다. 모든 곡을 장송곡 조로 편곡하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몇 차례쯤 목격했음직한 장면이 떠오른다. 피아노가 있는 공간에서 놀던 꼬마 하나가 갑자기 피아노 앞에 후다닥 앉아서 ‘떴다 떴다 비행기’(난 이걸 이제껏 노래 제목으로 알고 있었다)를 원곡의 2배속 혹은 3배속쯤으로 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모습 말이다. 이 정겨운 한 곡을 느릿하게 치면서 드는 생각은 이랬다. 알만한 동요를 쉽게 그리고 빠르게 쳐낸 아이에게는 그만큼의 정직한 시간과 땀이 있었을 거라는 것. 아무리 단순한 곡도 그냥 연주될 리는 없지.  


상상한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비행기>를 치는 모습을. 제 아무리 유명한 연주자도 국내에서 악기를 시작했다면 <비행기>를 피해 갈 수 있었겠나. 실은 간단하고 단순한 곡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그 구간을 지나가고 있다. /ya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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