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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차 승무원, 처음으로 사랑하는 도시가 생겼는데

2025.3 보스턴 널 사랑하지만, 너 너무 멀다

by 야키로브 Mar 10. 2025





이번 비행은 내가 사랑하는 도시 보스턴이다.











서울에서 정-말 멀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취항지 보스턴에 나는 와있다.



비행은 순탄했다. 

90프로가 넘는 외국인 승객 비율 이었지만 밀초이스도 잘 되었고, 

비행내내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비행 노선마다 승객들과 비행기 내부 분위기가 다른데, 보스턴은 특히

승무원들이 사랑해지 마지 않는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다.



내가 보스턴을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비행이 순탄하다는 것 이외에 

도시자체가 너무 편안하고 평화롭다는 것이다. 

다들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일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느껴진다. 

미국에서 안전함을 느낀다는게 얼마나 신기하고 특별한 일인지,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 

(한국 사람들을 모를거야!!) 

















호텔 앞을 나설때마다 주변을 두리번 거려야 했던 다른 동네와는 다르게

보스턴은 왠지모를 안전함을 가져다 준다.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 모두가 본인에게 몰두하고 있는 모습,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과 스마트해 보이는 차림새와 말투, 

이방인인 나를 배려해주는 모습까지. 

이런 도시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but, 

내가 보스턴을 가장 좋아하는 도시로 꼽으면서도 

자주 오고싶지 않은 이유가 있다. 

비행시간이 너무 길어서 이다.

아웃바운드 (인천-보스턴) 13시간 15분, 인바운드 (보스턴-인천) 는 15시간이 조금 안된다. 

(물론 겨울에는 15시간이 넘어가긴 한다) 



왕복으로 따지면 거의 30시간에 육박하는 비행시간을 갖는 도시가 몇 개 있는데, 

애틀란타, 뉴욕, 워싱터느 그리고 보스턴이다.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 영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관계로 몇년째 유럽노선들도 14-15시간을 육박하긴 

하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은 비교적 미주보다는 짧고, 밤비행인 관계로 미주 보다는 못하다. 




나는 비행기 멀미를 아주, 가-끔 하는데 

대부분 초장거리 비행을 할 때 그 증상이 발현되는 것 같다.

이륙하고 나서 4-5시간이 지나면 은근한 두통이 내게 스며든다.

두통이 오려고 할 때면 너무 괴롭다.

두통이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내게 머릿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정신적으로 나는 이 방문을 외면하고 싶지만, 천천히 스며들어 내 머릿속을 감싸버린다.



일을 하고 있는 중이기에 다른 동료들에게 티를 낼 수는 없어서

웃는 얼굴을 하고선 머릿속으로는 광광 싸움을 하고 있다. 

승객에게도 환한 미소를 보이지만 눈앞이 핑 돌고 머리는 거대한 바위를 얹은 것처럼 여전히 무겁다. 



항상 가방속에 타이레놀을 가지고 다니지만 이 마저도 소용이 없는걸 알기에 

두 알을 씹어먹으면서도 그저 비행기가 빨리 땅에 닿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그랬다. 



첫 번째 서비스를 마치고 김밥 다섯알을 먹었다. 

비행기에서는 소화가 잘 되지 않기도 하고, 사실 입맛이 없기도 해서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신선한 풀떼기가 남아있는 날에는 그 것을 조금 주워먹거나

라면을 팔팔 끓여 먹기도 하는데 오늘은 식권으로 받아온 김밥을 먹었다. 

그렇게 소화가 잘 되기를 바라며 먹은 김밥이 겨우 소화 되고 나서 부터 

두통이 찾아왔다. 


늘 그렇듯 친근하게 친구처럼, 익숙하게 말이다. 

두 번째 서비스를 마치고 나서 겨우 과일 몇조각을 먹었다.

주린 배를 달래줄 수 밖에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통때문에 곧 다 게워낼 것을 미리 알고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리기 직전 비교적(?) 산뜻하게 게워내고 나니 조금은 살거같다. 

이제 곧 랜딩이고, 호텔에 가서 뻗어버리면 되니까. 



그렇게 두 시간을 버티고 나서야 나는 호텔에 누웠다. 

비행시간 13시간 15분, 준비시간은 5시간 전, 비행기 내리고 정리하는 시간 2시간

도합 20시간을 내리 비행에 시달렸더니 정말 녹초가 되어버렸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써버리고 내리는 느낌이라 정말 말할 힘 조차 없다는게 

이런 기분인가 싶다. 



머리맡에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잠에 든다. 

김태리 배우가 읽어주는 오디오 북을 가만히 듣고있으면

어느새 스르륵 잠에 빠져든다.

귀로 책을 읽어나가다 어느순간 잠들고, 눈을 뜨고나면 

책 내용은 백지상태가 된다. 그렇게 같은 책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듣는다. 






















일이 끝나고 잠에 빠져들때면 나는 잠시 행복하다.

아무 생각 없이 잠에 빠져들 수 있는 감사함에서 오는 행복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정지시킨다.

모든 회로를 멈추고 온전히 ‘나’자신의 상태로 돌아온다. 

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온, 오프 버튼을 키고 끄는 것처럼 비행을 시작할 때 ‘온’, 하고 비행이 끝나고 나면 ‘오프’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는 것이 좋다. 



비행 내내 머리가 아파 괴로웠음에도 

비행이 끝나면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좋다. 



다만 비행동안 찾아오는 두통의 근원을 찾는 여정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신경통인지, 멀미인지, 아니면 체를 하는 것인지, 정신 수양이 부족한 것이지,

괄사를 해보고, 측두근 마사지를 해봐도 나아지지 않는 걸 보면 

정신적인 문제일까, 했다가 

제발 찾아오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가

한 번쯤, 문득 찾아오겠노라고 나를 안심시키는 지끈한 두통 녀석을 뒤로하고 


오늘도 뒷목을 문지르다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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