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가 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경력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뭐 그리 대단한 경력이 있을까 싶어 이 이야기를 클릭한 분들께 죄송하지만,
사실 그리 엄청난 경력은 없다. 그럼에도 굳이 '경력 단절'이라는 주제로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는지 말하려면, 이 얘기부터 꺼내야 할 것 같다.
열아홉 살. 운이 좋아서 서울 소재 전문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게 됐다.
수시로 다른 친구들보다 미리 대학 진학이 예정되어 있어서 경험삼아 수능을 보았는데,
아마 그 성적이었다면 서울에 있는 대학은 택도 없었을 거다.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뒤 일찌감치 방송 구성작가 내지는 출판사라는 두 가지 진로를 놓고 고민을 많이했다.
궁극적으로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내가 일곱살 때부터 나와 남동생을 키우며 가장이 된 엄마에게 더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빨리 밥벌이를 해야 했다.
엄마의 바람대로 서울에서 1,2등 하는 여상에 들어갔었으니, 수순대로 졸업해서
은행이나 증권가에 취업했으면 더 빨리 집안 경제 보탬이 될 수 있었겠지만 그 정도로 자신을 희생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나는 지독히 이기적이고, 허영심 가득한 편이라 있어 보이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이왕이면 직업도 그런 쪽이 좋았다. 이과 머리가 아닌 게 가장 컸지만.
여하튼 대학 졸업 뒤 방송 콘텐츠를 납품하는 모 기업에서 일하게 됐다.
그곳은 정말 공장처럼 콘텐츠를 찍어 내는 곳이었는데 내가 하는 일은 방송 구성작가가 원고를 쓰기 전 미리 촬영지 스케줄을 잡아놓고 가대본까지 쓰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6개월 정도 일하며 진짜 방송계 사람들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듣게 되었는데, 지금 일하는 곳보다 페이도 적고 성공하기도 쉽지 않지만, 방송계에서 성공하려면 학연, 지연, 우연, 인연 등 모든 동아줄을 다 잡아야 할 판이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거기서 일하는 리포터, 감독, 구성작가가 그 연줄을 잡지 못해 온 사람들이었으니
방송계 단점만 듣게 된 나로서는 일찌감치 그쪽 진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겁이 났거나 그만큼 진심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바로 몇 달 뒤 어린이 출판사에 입사해 출판 길을 걷게 되었다.
출판 일은 생각보다 돈이 안 됐지만, 기대만큼 재밌었다. 책 앞이나 뒷면에 보면 판권이라는 공간이 있다.
거기에 지은이, 펴낸이, 편집한 이들의 이름이 작고 빼곡히 적혀 있는데
난 거기에 지은이로 이름을 올리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신춘문예 번번이 실패했던 나는 내 재능이 아직 그 정도는 아님을 직감했고,
편집에라도 이름이 들어가기 위해 출판사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내 밥벌이 경력의 9할은 출판일이었다.
출판 업계에서 5년 정도 있자, 엄마한테 용돈 겸 생활비를 드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저축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8년차쯤 2천만 원 가까이 모아두었었다. 그러다 소개팅으로 한 남자를 만났고, 연애 중 갑작스레 임신을 하게 됐다.
세월호로 300명이나 되는 생떼 같은 아이들이 깜깜한 바닷속 별이 된 그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