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편집 생활

슬기로운 편집 생활

by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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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을 편, 모을 집

「명사」

일정한 방침 아래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아 신문, 잡지, 책 따위를 만드는 일. 또는 영화 필름이나 녹음테이프, 문서 따위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일.


내 직업은 편집자다.

회사에서는 콘텐츠기획팀이라 명명했고, 누군가는 에디터, 누군가는 기획자라고 하지만

나는 편집자라는 말이 좋다.


새 책을 만들기 위해 기획하는 일도 어쨌든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아 재구성, 즉 편집하여 새롭게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니까.

편집이 없으면 기획도, 콘텐츠도 나올 수가 없다.


책은 작가가 쓰고 편집자는 오탈자만 잡아 내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보석을 가공하지 않고 그냥 돌에 불과한 것을 세상에 내놓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편집하지 않으면 책으로 나올 수 없다.


편집자가 하는 일

콘텐츠 찾기

편집자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채널에서 자료를 검색한다.

시류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지, 반대로 어떤 주제를 시류로 만들 것인지

기사, 책, 유튜브 콘텐츠, 소셜네트워크 등 다양한 채널을 탐색해야 한다.


보통 출판사가 지닌 색깔에 따라 책을 내는 곳이 많은데 어떤 색깔이든

시류에 편승하거나 시류를 이끌어내거나 해야 한다.

전자는 안정적이겠으나 독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차별화 전략이 필수이고,

후자는 동물적인 감각과 마케팅도 제 몫을 해서 시너지가 발휘돼야 한다.


이렇게 주제를 선정했으면 원고가 필요한데, 주로 작가의 영향력에 따라 책의 성격이 좌우되겠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처럼 콘텐츠가 주인 곳은 편집자의 기획력이 책의 만듦새를 좌우한다.


그러니 어떤 콘텐츠를 정했다면, 그 책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표지나 내지 디자인은 어떤

이미지로 끌고 가야 할지 머리 속에 미리 스케치를 해 두어야 한다.

야마시타미키3.jpg 참고하고 싶은 내지 디자인을 보면 그때그때 캡처해 둔다.



일정 짜기

콘텐츠와 기획 방향, 저자 선정을 마치면 일정을 짜야 한다.

진행 중인 도서가 있으면 도서 틈 사이에 원고를 언제 마무리 할지, 중간 중간 작가를 채근해야 하고

그림이나 사진이 들어가는 도서라면 그림 작업 일정 또는 사진 촬영 일정을 러프하게 정한 뒤

작가, 디자이너의 작업 일정까지 함께 체크한다.


한마디로 편집자는 책이라는 톱니바퀴를 빈틈 없이 맞춰서 잘 굴러가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하늘에서 원고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손이 비지 않도록 원고 작업 일정을 잘 맞추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교정 교열 보기

원고가 진행됐으면 디자이너에게 넘겨 조판을 비롯한 내지디자인 작업이 들어가는데,

원고 상태가 불량하면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PC로 초교를 보기도 한다.

그래야 교정지가 빨갛게 피바다로 물들이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다행히 원고 상태가 좋아서 교정지가 출력됐다면 오탈자가 없는지, 원고가 기획 방향과 맞는지, 문법 오류는 없는지 교정 교열을 봐야 한다. 나는 이 작업 단계가 가장 좋다.


작가를 만나서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교정 교열은 오롯이 원고와 나 1대1 대화다. 마치 원고가 나더러 더 좋게, 독자들이 읽기 쉽게

만들어 달라고 애원하는 순한 양 같다. 물론 거친 양처럼 원고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원고를 극복할 때 더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편집자인가 보다.


부속 챙기기

교정 교열이 진행 됐으면 보통은 바로 1교를 수정 진행한 뒤 2, 3교는 크로스 교정을 보게 되는데

우리 회사처럼 영세한 곳은 편집장님과 나 둘만 보게 되거나 외주 편집자에가 마지막 교정을 넘기기도 한다.

다른 이가 교정을 보는 동안 책에 들어갈 판권 정보, ISBN, 표지에 들어갈 내용 등을 챙겨야 한다.


여기까지가 편집자가 하는 책을 만들기까지의 주요 업무이고

그 외에 저자 관리, 인세 관리, 보도자료 작성, 도서 증정 업무 등 출판사에 따라 여러 가지 업무가 추가되는데 어째뜬 콘텐츠 기획부터 책 출간 이후 책과 관련된 업무 전반을 맡는다고 보면 된다.

(마케팅 팀이 부재할 때 카드뉴스와 상세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


책이 좋아서, 그저 판권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 때 고통이 있긴 하지만, 또 새로운 일을 하다 보니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출판 일은 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러 사람을 연결하는 중심에 있다 보니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상당하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한 명의 편집자 꿈나무라도 생긴다면,

나의 에너지가 +10은 충전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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