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편집 생활
한 여름에 취업해 장마철에 열차가 지연될 때도 출근길이 싫지 않았다.
환승 구간이 몇 번 있긴 하지만 서울역에서 합정역까지 멀지 않았으므로 다닐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11월. 날씨가 몹시 추워지고 해가 늦게 뜨니까 몸이 대사 활동을 하지 않는 건지,
동면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싶은 건지. 아침에 눈 뜨기가 너무 힘들다.
'아, 가기 싫다.' 이런 생각을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입밖으로도 꺼내지 않는다.
정말 가기 싫어질 테니까. 가기 싫다고 안 갈 수가 없으니까.
옷을 꽁꽁 껴입고 출근하는데 전 날 오랜만에 마신 술의 여파 때문인지
눈이 떠지지가 않아 기차에서 곯아떨어졌다.
아무튼 벌써 이렇게 지각, 결근 한 번 하지 않고 취업한 지 5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내 자신이 대견하다. (나를 출근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단연코 대출이다.)
이렇게 심신이 고달파 포기하고 싶어지는 요맘때 초기에 목표했던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려고 한다.
일단 여기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내년에 연봉협상을 해서 몸값을 올린 다음에
더 이름 있는 출판사에 가서 편집장이 되어 보는 것이 표면적이고 가시적인 목표다.
반드시 해낼 거고 그래야만 한다. 그럴 거다.
궁극적으로는 5년 안에 베스트셀러가 작가가 되어 부와 명성을 쌓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질적으로 풍족한 환경을 조성해 주고 싶다.
물론 아이에게 물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보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시기이기도 하고.
하지만 40년 가까이 부모의 원조를 거의 받지 않고 혼자 생존해 본 자로써
물질 없는 사랑이 얼마나 공허하고 힘이 없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요즘 흔히들 가난하면 애를 낳지 말지 라는 말들을 많이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그 정도까지 극단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개천에서 용나고, 가난해도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하면, 돈이 없으면 성공해야 할 의지를 갖고 힘을 키우는 것 자체가 힘들다.
성공 경험치가 낮기 때문이다.
성공해서 돈이 많아지는 것보다 돈이 많아서 성공을 사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전자처럼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 재능,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외에 자기에 대한 믿음, 성공 경험치 등이 필요한데
돈이 많으면 재능을 제외한 나머지가 기본으로 깔리기 때문에 성공을 쉽게 살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성공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꼭 성공(부를 이뤄야)해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나도 때로는 소박하게, 미니멀하게,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며 애쓰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삶을 표방하는 척 살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욕망이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인정한다.
나는 물질을 좋아하고, 그것을 탐닉하며, 이미 가진 자들을 몹시 부러워한다.
보여지는 것 뿐만 아니라 진짜 돈이 너무 많아서 돈을 어디에 숨겨 두고 미니멀하게 살 지언정
일단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니, 꼭 그렇게 될 거다.
8년 동안 매일 출퇴근자로 살다가 8년을 집에서 가정주부로, 프리랜서로 있다가
다시 출근하려니 출퇴근하기가 싫고(일 자체는 만족), 게다가 2~30대 초반 때보다 나이 들어
체력도 영 받쳐 주지 않지만... 이 겨울이 지나고 8~9개월 차가 되면
출퇴근이 몸에 밸까..?
어제 문득 아침 지하철에서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성공하기 싫어서, 돈이 많고 싶지 않아서, 회사 다니는 게 너무 좋아서 회사 다니는 걸까?
이렇게 매일 출퇴근하는 삶, 행복하고 만족할까? 하는...
하와이 대저택의 <더 마인드>라는 책을 읽는 중이라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데...
그러다 이내 한편으론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법륜 스님이셨던가, 어떤 스님께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복해 집착하는지 모르겠다고.
네가 왜 꼭 행복해야 하냐고.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줄 아느냐고.
풀이 그냥 풀이듯, 새가 그냥 새로 살듯이, 인간도 그냥 인간으로
태어난 것 뿐이라고.
그 얘기를 상기해 보면
그래 또 뭐 내가 그렇게 뭐 대단하다고 신이 나를 만들 때 어떤 원대한 뜻이 있어서
나를 공들여 만들었을까? 싶은 거다. 정원사가 화단에 정성스럽게 심은 꽃이 아니라
그냥 초원에 아무 생각 없이 뿌려진 씨처럼 뿌려진 걸 수도 있겠단 생각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개미처럼 출근하는 길이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