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힘이 빠졌으니 망정이지
살면서 멍 때려 본 적 있어요?
파견 근무가 있던 프로젝트의 TF룸을 방문하기 위해 함께 차를 타고 가던 그가 느닷없이 던질 말이었다. 그는 내가 맡은 사업부의 협력사 대표였다. 이전부터 안면이 있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사업부의 업무 중 내부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일을 프로젝트 단위로 협업하면서부터였다. 사업부에서 진행하는 대부분의 업무는 디바이스 내에서 동작하는 UI나 GUI와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간간히 기존의 웹으로 구현되던 것의 연장선에 있는 업무가 주어지곤 했는데, 그럴때는 늘 함께 협업을 했다. 대게 이런 협업에서는 그와 나도 실무자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가는 일이 많았다. 단순히 관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무적인 일을 함께 하다 보니 '회사 대 회사의 관계'라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서 더 돈독해져서 종종 일 얘기가 아닌 사람 사는 이야기를 주고 받곤 했다.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일 말고도 할 게 많은데
그 역시도 젊은 시절 일의 재미에 푹 빠져 지냈던 사람이었다. 여러 번의 이직 끝에 조직에 대한 한계를 느끼면서 자그마한 사업체를 만들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일의 양을 조절하며 '일과 생활' 사이의 균형을 이룬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조직이 정해 놓은 채바퀴를 정신없이 돌며 할당량을 채워가던 것에 지쳐가고 있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던 그는,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캠핑을 갔다온 이야기나 낚시를 했던 것 등 일이 아닌 다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꺼내곤 했다. 그와의 협업이 잦아질 수록 일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 그의 삶이 내 마음 속 호수에 잔잔한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일이라는 것을 꼭 나처럼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라는 파장.
생각 있으면 얘기해요
다른 대안도 있다는 거 잊지 말라구요
그러던 그가 내가 7개월간의 긴 휴직시간을 가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얼굴을 보자고 연락을 해 왔다. 그곳에는 그와 함께 동업을 하고 있는 파트너도 함께 자리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자 회사를 운영했던 두 사람이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고 의지하며 살기 위해 하나의 회사로 합쳤던 것이다. 나를 보자고 했던 것은 이 두 사람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나오는 것도 고려를 하고 있다면 함께 하는 게 어떠냐고 말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것이 함께 하고 싶은 회사의 기본 모토라고 했다. 기업을 키우고 확장하고 시스템을 도입하며 쉴 틈없이 돌리는 그런 회사가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끼리 서로 나눠 가질 만큼의 수입을 얻고 각자의 강점으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동등한 파트너 관계를 만들어 가자고 했다. 사실 휴직한 회사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퇴사를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던 참이기는 했지만, 나를 믿고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길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는 와중이라 선뜻 '그러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휴직이 거의 마무리 되어갈 무렵 선택의 최종단계에 이르렀을 때, 나의 결정을 퇴사로 굳히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멈추지 않으면 도달하게 될 미래를 보게 되었던 사건. 고민 끝에 '퇴사'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니던 회사에 이를 알렸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싶을 때 그의 제안이 다시 떠올랐다. 제안을 한지가 한참 된 까닭에 그것이 유효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회사의 상황이란 그때 그때 달라지니까 말이다.
그 제안 아직도 유효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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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음 굳혔어요?
우리의 동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동업자로 모인 세 사람은 정말 강점과 약점이 뚜렸하게 갈렸다. 프로젝트를 논리적이고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때때로 일에 대한 지나친 몰입으로 인해 스스로 과부화를 초래하곤 했다. 나머지 두 사람이 혼자 일을 다 껴안고 멘탈붕괴 되기 직전의 상태에 빠진 한 사람에게 작업을 도와줄 인원을 붙여서 번아웃을 막았다. 창의적이고 비약적으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사람은, 때때로 판단이 과하게 편향되는 경향이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이 어림짐작을 직관으로 굳히려는 관점에 맹점을 찾아냈다. 한번 더 검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선택에 있어서 결단을 해야 할때 망설임이 많았다. 나머지 두 사람이 결단에 있어서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리해냈다. 바꿀 수 없는 건 실행만 남은 것이다. 세 사람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다보면 각자의 시선이 가진 차이점이 이슈를 다각도로 바라보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곤 했다. 이전 기업에 비해 최종의사 결정을 위해 기다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소모는 적어지고, 자신의 생각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일도 적어졌다.
우리가 십년 전에 만났으면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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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뭐해요? 십중팔구로 깨졌지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세 사람이 한 자리에 앉기까지, 각자는 이전의 시간 속에서 뼈저리게 실패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실속을 차리지 못하고 무턱대고 남을 믿었다가 자신이 공들여 쌓은 것들을 빼앗긴 채 뒷통수를 맞은 사람도 있었고, 자기 마음 가는대로 사업을 진행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진퇴양난의 벽에 부딪혔던 사람도 있었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신념에 집착하다가 영혼까지 팔아먹고 너덜너덜하게 탈진한 사람도 있었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엎어졌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만들어가는 회사에 대한 기대치의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 생겼던 것이다. 세 사람은 그것을 공유하는 일부터 했다. 일종의 '동업자 계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업이나 회사규모의 외면적 확장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세 사람이 공히 바라보는 인력과 사업규모의 마지노 선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그 이상의 것은 불필요한 관리 포인트 증대와 사업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가져올 수 있다는데 서로 동의했다. 사업이나 회사나 규모가 일정 수위를 넘어서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사업과 회사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지출이 더 많아진다.
경영을 위한 모든 정보는 투명하게 공유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든 결정은 세사람이 함께 모여서 하기로 했다. 회사 내에서 돌아가는 금전적인 모든 흐름은 세 사람의 휴대폰 알림으로 실시간 공유되었다. 그 밖에 프로젝트나 회사 운영과 관련된 정보의 순차적 공개라는 것은 없었다. 함께 고객을 만났고 파악했던 것을 공유했고 그 기반으로 판단했다.
세 사람 사이에 권한이나 책임도 동등하게 부여하기로 했다. 부득이하게 1명이 대표이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으나 대외적인 것일 뿐이었다. 그것과 별개로 각자가 맞은 역할이 따로 있었고 그 역할에 준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 되어으며 각자의 힘과 부담은 비교적 균등했다. 무엇보다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일의 오너쉽을 갖는다는 게 원칙이었다.
세사람 사이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영역, 즉 모두가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에 방어적이지 않기로 했다. 굳이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지속적으로 발생하지도 않는 일을 처리하기 위한 지원인력을 내부에 두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직접적이고 항시적으로 일에 참여해야 할 소수의 내부와 간접적이고 일시적으로 일에 참여해야 할 다수의 외부를 두었다.
참았던 것이 순간적인 감정의 격화로 인해 터져 세 사람이 지켜온 회사라는 배를 뒤집는 일을 하지 말자고 했다.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소에 자주 대화해야 안정적인 동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불만이 생기거나 의심스러운 것이 생겨 신뢰가 무너질 때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속으로 삼키다가 관계가 악화되도록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
고객을 레퍼런스가 아니라 지속적이면서 안정적인 관계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새롭거나 이슈가 될 프로젝트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꾸준히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고객을 만나고, 시키는 일에만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관점에서 바라봐 줄 수 있는 파트너쉽을 맺어가자고 말이다.
세 사람이 모두 동의하는 가이드라인, 그 외의 것들은 필요할 때마다 협의로 풀어갔다. 사진에 담고 싶을 만큼 멋진 사무실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사용하는 비용도 없고, 거대한 포부가 담긴 비전도 없고, 소속감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사내문화도 없다. 회사 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일 말고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 주면 자신의 권리도 존중을 받는다. 즉 내가 일과 삶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기 위해서는 타인의 균형을 깨지 않아야 한다. 큰 전제는 그것이었다.
우리가 힘이 빠졌으니 망정이지
우리의 동업이 이제 거의 십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서로의 언성이 드높아지는 일은 전보다 많이 줄었다. 각자의 성격과 성향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멈추거나 주요 대립자 외의 나머지 한명이 중재를 하는 방식으로 마찰을 풀어간다.
기업과 시장 그리고 나와 타인
변수는 시장에 한정된다.
회사에 대한 지향은 이미 처음부터 정해 두었다. 기업의 변화와 성장에 지향을 두지 않는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현실적 기반이 우리의 지향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이 목적이라면 일이란 그 정도의 무게가 딱 적당했다. 우리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야 했다. 일에 대한 비현실적 이상을 품고 있으면 쉽게 지치고 견디기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나와 타인은 변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서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바라봐야 한다. 최근에는 서로의 개인차보다 더 변화를 촉진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한계치였다.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의지해 가는데 힘이 실렸다.
남은 변수는 시장, 이 분야에서 가장 따라잡기 힘든 것은 그것이 되어가고 있다. 이건 이 사업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과제다. 안팎으로 찾아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좁혀진 변수로 생긴 틈은 남은 변수에 적응하는데 쓰인다.
우리가 힘이 빠졌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모든 변수를 다 제어하려고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