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의 속사정

멈춰야 할 시점

by 얄리
고민이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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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 두고 싶은데, 잘 안되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혼신을 다해 일을 했다. 자진해서 야근을 하고 맡겨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것까지 고려하며 자칭 '창의적인 문제해결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렸다. 덕분에 남들보다 더 빨리 팀장이 되었고, 점점 뭐든지 도전할 수 있는 추진력 있는 ‘여전사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갔다. 마침내 한 개의 사업부를 책임지는 본부장의 자리에 오른 나에게 ‘창업 맴버로서 사원에서 임원까지 오른 유일한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 나만의 전쟁에서 살아남아 품에 넣어둔 깃발을 높이 들고 흔들며 “이제 전쟁은 끝났다. 내가 이겼다!”라고 마음 속으로 크게 외쳤다.


문제는 전쟁이 끝났다는 것 때문에 발생했다. 업계에서 십년에 까까운 업력을 구축하고 나름 이름있는 회사로 발돋음 할 때까지는 적장의 목이라도 따 올 수 있는 전사가 가장 필요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내실을 기해야 하는 때가 오자 전사보다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전문 관리자가 절실히 필요해졌다. 조직이 벌어들이는 수익과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지출의 균형을 맞추고 꾸준하게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실속있는 운영력. 가지고 있는 전투력으로 맨 앞에서 돌진하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의 뒤에서 독려하고 압박하는 역할로 변화하면서 손발을 묶인 채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기댈 어깨를 제공해야 할 팀원들에게 도리어 넋두리를 할 수는 없었고, 예전과 달리 첨예하게 경쟁하게 된 타부서의 장들과 할 수 있는 얘기도 한계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척척 잘 알아서 처리한다고 믿고 있는 경영진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 메신저에 나열된 사람들을 아무리 다시 봐도 얘기를 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점점 혼자만의 고민에 빠지는 시간이 늘어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질 수록 더 입을 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힘에 부쳐 일그러지는 표정을 애써 숨기며 최대한 포커페이이스를 유지하도록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릴렉스, 괜찮아. 익숙해질 거야.


점점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변모해가는 기업, 메뉴얼처럼 일년살이 사업계획서를 쓰고 목표달성을 위한 구호를 외치며 연말이면 조직의 성과를 정산하여 구성원의 연봉상승폭을 할당받아 조정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구성원들은 해가 갈수록 지쳐갔고 여기 저기서 볼멘 소리로 웅성이기 시작했으며 잦은 이탈이 발생했다. 어떻게든 와해를 막아야 한다. 나는 지옥의 문지기로 전락해 버렸다. 지난 날 성취감에 도취되어 치열하게 일했던 때의 나는 휘발되어 버리고 껍데기만 남게 된 지 오래지만 문신처럼 새겨진 나의 타이틀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다. 무기력과 회의감으로 삶이 점점 황폐하게 변해가고 더 이상 버틴다면 나 자신도 잠식당해 버리겠다는 위기감이 올라왔지만 쉽게 멈추지 못했다. 멈추려고 시도를 할 때마다 “네가 없으면 안돼”라는 말은 마치 주술처럼 나를 여전사로 되돌려 놓았다. 그 힘으로 한동안은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 듯이 반복되는 정량적 일상을 처리하는 로봇이 되었지만 결국 잔고장이 많던 로봇은 렉에 걸린 듯 더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처방으로 7개월의 휴직이 주어졌다. 좀 길게 쉬면 방전된 에너지를 자가복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경영진의 조치였다.






조금은 긴 휴식기에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삶이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인지를 알고 싶어했던 나는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기로 했고 수업과 별개로 자기 자신의 이해를 위한 첫 과제로써 ‘자기분석’을 시작했다. '나에게 닥친 현실적인 고민은 뭘까?' 곰곰히 생각한 끝에 처음으로 내 안의 고민을 꺼내 놓았다. “이제 여전사 놀이는 그만하고 싶어요. 너무 지쳤고 무기력한데 멈춰지지가 않아요.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되요.”라고 말이다.


그만 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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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나에게 실망하겠죠.


대학원의 한 학기가 마감되고 있을 무렵, 그 기간동안 꾸준히 진행되었던 자기분석 시간동안 무수히도 많은 ‘버려지지 않기 위해 잘하는 척 노력했던 나’와 마주쳐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십년을 근무했던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무늬만 다를 뿐 모두 같은 가면을 쓰고 있었던 내가 보였다. 씩씩한 척, 자신감 충만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가면. 하지만 가면을 벗어버리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안부전화를 받을 때마다 나는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에 시달려야 했다. 대안, 그만 둘 수 없다면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관리적 업무가 아닌 새로운 역할이라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즈음에 나의 사수인 경영진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돌아갈 지점을 상의하기 위해 얼굴을 보기로 했다. 집의 위치가 서로 유사했기 때문에 편하게 사수의 동네 근처에서 술 한잔하며 말이다.


회사에서 근무를 마치고 약속장소로 온 사수의 얼굴은 피곤에 쩔어 있었다. 아마도 수익창출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각 사업부의 본부장급들을 관리해야 했던 그의 하루는 고되었나 보다. 술이 한잔씩 들어가면서 내가 휴직하고 있을 동안 회사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여전했다. 잠시 멈춰섰던 그곳의 일들은 공백과 무관하게 변함이 없었다. 이제 회사의 이야기는 그만하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을 때 화장실에 간다고 자리를 비운 사수는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았다. 늘상 업무에 대한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았을 때마다 든든한 지원군 같았던 사수는 나보다도 더 포커페이스로 사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기에 설마 그가 함께 의논을 하고 있던 자리에 대한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증발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사수는 다음날 연락이 왔고 나는 별일 없이 잘 헤어졌다고만 전했다.


정말 많이 고민했는데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며칠을 생각했었다. 사수와의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그는 임시로 운영되던 나의 사업부의 공백을 빨리 메우고 원복시키기를 원했다. 그건 내가 필요하다는 싸인이었던 게 분명했지만 전처럼 뿌듯하지 않았다. 그 말을 전하기까지 어떻게든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아버리고 나를 남겨 둔 채 집으로 돌아가버렸던 그의 뒷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어쩌면 나만큼이나 지쳐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수의 본 모습과 마주했던 것 같다. 나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모두 자신들의 짐에 눌린 채 견뎌내기 위한 몸부림을 치며 살아왔을 뿐이었다. 나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은 그렇게 기대를 걸어서 필요한 것을 얻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 모른다. 기대를 구하는 나도 기대를 거는 그들도 간절하기는 매한가지. 그날의 그의 모습은 내가 앞으로 겪게 될 나의 미래였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면 나 역시도 누군가의 중요한 선택을 위한 시점에 그와 같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쳤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부지불식간에 증발해버리는 뒷 모습을 남길 수도. 실망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산다는 것의 허무함이 몰려왔다. 나는 내가 안겨줄 지 모르는 실망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부서의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일부러 휴일 대낯에 회사에 나갔다. 내 자리에 있는 짐들 중에서 개인적인 물품들을 박스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고 며칠의 시간이 흐른 후 내 부서의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월요일에 출근해 텅빈 내 자리를 보고 당황해서 바로 연락을 못했다고 했다. 한동안 그들은 자신들을 버려두고 퇴사해버린 몰인정한 사수인 나에 대한 원망을 한 보따리 풀어 놓았다. 다시 돌아올거라고 믿고 기다렸는데 실망이라는 말도 분명히 해 두었다. 나는 미안함과 동시에 그 선택을 하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를 털어 놓았다. 서로간의 주고 받는 이야기 끝에 그들은 내가 한 선택을 이해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후 나의 사수를 포함한 경영진으로부터 송별회 제안이 있었다. 대표님을 빼고는 가장 장기로 근무한 나의 퇴사를 아쉬워해 주는 자리였고 대표님은 손수 준비한 지갑을 선물로 내밀었다. “뭘 하든 돈 많이 벌고 건강해라.” 기껏 7개월이라는 유례없는 휴직을 승인해 놨더니 사직서를 날리는 괘씸한 직원이었지만 그동안 많은 시간 함께 해 준 게 고마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순간 나의 부서원들에게 또 나의 상관들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끓어 올랐던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런 마음에 휘둘리는 결정은 언제나 오답이었으니까.





사수의 속사정


그건 사수만이 안다.


나의 사수는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을 걸 직감하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짐에 대한 압박감에 무의식적으로 도피를 한 것일 수도 있고, 일과 별개로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걱정거리가 생각나 자신이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일 수도 있다. 사수로서의 나는 반복되는 조직 운영의 부담감과 회의감 때문에 사직서를 냈을 수도 있고,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처음과 달라진 자신의 존재 이유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에 더 이상 괜찮은 척하며 지내기를 포기했을 수도 있다. 사수를 바라보는 나의 심정이 안타까움이었는지 실망이었는지 아니면 인간적인 공감이었는지 알 수 없다. 나를 바라보는 팀원들의 심정들도 각자 달랐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외에 알 수 있는 건 없다.


속에 있는 것은 겉에서 바라보고 인지하기 어렵다. 사정에 굳이 '속'이라는 것을 붙이는 것은 그것이 겉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커페이스라는 가면, 실제로는 부글 부글 끓어오르는 얼굴일지 아니면 차갑게 식어버린 얼굴일지 알 수 없도록 안과 바깥을 철저하게 분리시킨 장벽. 우리는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호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다만, 순기능만 있는 게 아니어서 문제다. 늘상 가져다 쓰다보니 어느 순간 그것이 가면이라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자신의 얼굴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괜찮은 척을 하다가 정말 괜찮은 줄 알거나, 씩씩한 척을 하다가 허구한날 자신이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는 줄로만 안다. 거울 앞에 서면 노출될 수 있는 가장 표면만 볼 수 있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은 "이게 너야"라고 말한다. 가면은 남을 속이면서 나 자신도 속일 수 있다. 만약 내가 속았다면 그건 보이는대로 생각한 내 탓이지 가면의 탓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