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의 이탈, 존재상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by 얄리

어머니를 갑작스럽게 잃고 난 후 한동안 일에만 매달렸다. 회사는 점점 디자인 강점을 가진 온라인 에이전시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직원수도 배로 늘어났다. 탄력을 받아 경쟁사보다 좀 더 높은 우위를 점유하기 위한 방안으로, 디자인에 있어서 브랜드를 이해하고 사용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전담팀이 꾸려졌다. 그 필요성을 어필한 내 입김도 한 몫 했다. 이를 '디자인전략팀'이라 명명했고 나는 그 팀의 팀장이 되었다.


조직도 세분화 되었다. 이전은 기획 2개팀과 디자인 2개팀이 필요에 따라 수시로 TO를 구성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제안 중심의 영업팀과 수주된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한 구현 중심의 기획팀, 제안과 수주된 프로젝트의 전략을 담당하는 디자인전략팀과 실질적인 아트웍을 담당하는 디자인팀으로 새롭게 재편되었다.


디자인전략팀의 업무 대부분은 제안서에 들어가는 디자인의 전략을 세우고 이에 준해 나온 디자인 시안으로 고객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일이었다. 제안에 응한 각 사의 디자인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그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워진다. 이때 전략적인 관점은 보이지 않는 우열의 핵심으로 작용하곤 했다. 고객은 '디자인에 있어서 내세우는 전략이 뭔지'를 묻기 시작했고, 경쟁사는 우리의 제안 방식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물론 제안이 아니라 고객의 설득에 애를 먹는 프로젝트의 경우 부분적으로 관여하긴 했지만 주는 아니었다. 제안을 준비하기 위한 기간은 대체로 2주 안팎, 팀 내에는 2~3개의 제안이 항상 돌아가고 있었고 하나가 끝나면 바로 다음 제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본 근무시간이 1일당 최소 12시간이라 자정 즈음에나 집에 들어가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그런 일상은 약 3년간 지속되었다.


임신입니다. 축하드려요.


소식을 듣게 되기 전부터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랍거나 갑작스러울 것은 없었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회사에서의 일은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배가 불러오는 것과 별개로 제안서는 써야 했고, 프리젠테이션도 해야 했으며 늦은 귀가도 여전했다. 물론 누군가가 내게 임신과 상관없이 무조건 맡은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고 몰아붙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들은 내가 임신을 한 산모라는 것 자체를 딱히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럴만한 말이나 행동을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흰 눈이 펑펑 내려 인도와 차도의 구분조차 사라져 버린 서울 시내 한복판,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 회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던 제안서를 손에서 내려 놓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이 미끄러워 만삭의 몸으로는 경사진 퇴근길을 내려가기가 두려웠다. 남편은 잠결이었고 짜증스러운 댓구 끝에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결국 10분이면 택시를 잡을 수 있는 곳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을 30분을 걸려 간신히 내려와 택시를 잡고 집에 갔다. 그날밤 그 불안한 발걸음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보통은 예정일에 거의 임박한 시점부터 출산 후로 이어지도록 출산휴가를 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한달 반 정도를 앞당겨서 휴가를 냈다. 임신중독기운이 있어 급격하게 체중이 증가했고 좋지 않은 수치가 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임신 전과 하나 다를 것 없는 강도의 업무로 많이 지쳐 있었다. 팀은 팀원들에게 맡겨 진 채 팀장의 부재에 따른 대체 인원 없이 가동되었다.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끝에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날이 왔다. 출산 후 2주, 산후조리원에서 지내는 동안 아무런 잡념도 끼어 들 수 있는 틈이 없었다. 감정적인 동요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 어떤 부대낌도 자극도 없는 평온함만 존재하는 시간. 잠깐 짬을 내서 아이를 보러 왔다가는 남편 외에는 아무도 아이와 나의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니 모든 게 달라졌다.


아이는?


모든 대화의 시작과 끝, 안부를 묻는 모든 인사말이 그랬다. 아이를 보기 위해 집을 방문한 시부모님은 미역 한줄기와 시금치 한단을 사가지고 와 드럼통에 미역국을 한 솥 끓여 놓고는, 시금치는 다듬지도 않은 채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이의 목욕물을 받아오라고 했다. 아이를 씻겨 보고 안아보고 싶어셨던 거다. 아이의 행동 하나 하나를 신기해 하셨다. 그후 남편과 시부모님의 수화기 넘어로의 대화는 온통 아이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남편은 퇴근하면 아이를 건네 받고는 정성껏 돌보다 아이를 배 위에 눕힌 채 나란히 잠이 들었다. 나의 친가 쪽 친척들은 전화를 걸어 올 때마다 "외손주를 너의 엄마와 아빠가 봤으면 얼마나 이뻐라 했을까?"라고 먼저 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흐느끼곤 했다. 나의 무사함은 아이의 건강함으로 퉁쳐졌다. 아이가 잘 지내면 되었다. 누구 누구의 엄마,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아. 하루 아침에
세상의 궤도에서 밀려 사라진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상실감에 홀로 시달리고 있었다. 분명 아이와 단 둘이 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아이와 나를 둘러싼 주변이 있을 때면 나를 제외하고 아이와 주변은 모두 내게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이 외에 모두를 물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가 있었으면'하고 바랐다. 막상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 마자 예상치도 못한 소외감과 허탈함이 나를 덮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견디기 힘든 것은 더 없이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것도 모자랄 판에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였다. '살기 싫다' 어느 날 잠든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창 밖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출산 휴가가 끝나고 나는 회사로 복귀했다. 아이는 주중에 시부모님이 봐 주시고 주말에 부부가 데려오기로 했다. 둘 다 일찍 퇴근하지 못하는 데다가 시댁과 물리적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시부모님이 아이를 봐 주시는 동안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아야 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우리의 살림은 여느 가정들보다 턱없이 기초가 부실했다. 시부모님과 남편의 전화통화는 더욱 잦아졌다. 나까지 거들어 추가적인 얘기거리를 주고 받을 필요도 없이, 굳이 하자면 '돌봐 주시느라 힘드셔서 어쩌죠' 정도.




복귀한 회사는 몇 개월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맡았던 팀은 곧 해체되었다. 제안에 특화된 부서는 실질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부서에 비해 금전적 손실이 많았다. 수주를 하면 수익이지만 수주를 하지 못하면 투입된 공수는 모두 손실이었다. 특히나 제안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영업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빡센 업무강도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인력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였다. 제안을 하지 않고도 프로젝트를 가져 오는 일, 좀 더 공격적인 영업력을 필요로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나를 포함한 몇몇이 새로 부임한 마케팅실장의 구성원으로 배정되었다. 이를 테면, 기업의 체질 개선과 혁신을 위한 임시적 비상체제.


그간 했던 방식은 다 버려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요


갑자기 회사 내에 개혁의 아이콘으로 입성한 마케팅 실장은 내가 하던 모든 방식을 부정했다. '사업을 주관하는 사람으로서의 관점' 내가 이제부터 배워가야 할 것은 그것이라 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던 세상, 모든 미팅에 나를 참석시킨 그는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괜찮아요. 그냥 듣고 모르는 말은 메모했다가 나중에 찾아봐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요"라고 말이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왜 그의 구성원이 되어야 하는지, 내게 맡기고자 하는 일은 대체 무엇인지, 어떤 미래를 그리기에 내게 그 일을 시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밑에 소속된 모든 이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무기력에 지쳐가는 사람들의 넋두리만 메아리처럼 반복될 뿐이었다.


나는 여지껏 뭘 한 거지?


공허했다. 굳이 대기업을 나와 새로 만들어지는 기업으로 뛰어 든 것은, 짜여진 틀 안에 나를 맞춰 넣고 싶지 않아서였지만 이젠 내가 속한 틀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변화하려고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던 끝에 만들어 놓은 나의 길이란, 조직 전체적인 관점에서 아무 고려사항이 되지 않았다. 무언가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내가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스스로 주체적으로 일을 해 나가는'이라는 건, 더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아주 큰 변화라는 것 밖에.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조차 내 주제 밖의 일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는 것 밖에.


이곳에서 마저도 궤도 이탈인가?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세상의 법칙이 달라진 것 같아요.
나는 멀어져 가요.
내 삶의 중심으로부터, 내가 가려던 길로부터


내가 지닌 무게만큼 나를 강하게 끌어 당기던 인력이 어느 한순간 사라진 것처럼, 한 순간의 발걸음으로 인해 지구의 바깥 쪽으로 붕 떠오르는 느낌. 지금껏 바라보며 걸어왔던 길이 눈 앞에서 투명하게 사라진 것 같은 느낌. 이때가 그랬다. 대게 한쪽이 그러면 남아 있는 한쪽에 힘을 쏟아 머물렀겠지만, 삶의 두개의 큰 축 모두 내게 남아 있지 않았다.


엄마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그저 한몸이었던 기억만으로 저절로 애착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한 가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연스럽게 한 울타리 내에 자리를 잡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 기업의 현재는 쌓여온 시간 만큼의 시행착오와 변화에 따른 산물일 뿐 태생이 틀에 박혀 있거나 자유분방한 것은 아니라는 것과 조직이 변화하는 것에 따라 개인도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조직과 개인이 공생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룰이라는 것. 그런 것들은 갓 궤도를 이탈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정 당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남게 되는 건, 어떻게든 사라져 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얻기 위한 행위 뿐.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 의기 투합하여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나라를 세우고 그 안에 자신과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채워 넣으려고 하는 것. 방금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정말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가까이 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더 멀게 가는 행보. 그것만이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