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결과 보고
기업의 체질 개선과 혁신을 위한 임시적 비상체제, 소수의 사람에 의해 주도되는 선문답 같던 변화의 시도는 조직 전체로 파급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임시였던 조직은 곧 해체가 되었다. 나는 여지껏 해 오던 온라인 사이트 구축과 관련된 업무가 아니라, 여러 디바이스의 UI와 GUI를 제공하는 부서를 맡게 되었다. 당시에 핸드폰으로 시작되어 월패드, ATM기, IPTV, 네비게이션 등 스크린을 장착한 다양한 디바이스가 동시다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분야, 기존까지 해 왔던 온라인 사이트 구축 업무와는 프로세스도 고객성향도 구성원에게 필요한 자질도 상당히 다른 업무였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실무적인 지식은 새로운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과 다를 수 밖에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실무적인 개입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UI설계를 위한 기획팀과 GUI디자인 팀의 중간관리자를 세우고, 새로운 고객층을 만들어가는 것과 필요 시 협업 할 파트너를 구하는 일에 집중했다. 본의 아니게 바로 직전에 속했던 조직에서 일방적으로 학습이 되어지다 시피했던 '사업을 주관하는 사람의 관점에 준한 업무'가 나의 주요업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간 했던 방식은 버려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요"라며 가르쳐 주었던 것들은 새로운 조직을 운영하면서 유효해졌다. 당시에는 연관관계가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스스로 수치화 된 양식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한 것이다. 그 즈음 회사는 또 한번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사내의 조직은 경영진과 실무진이라는 이원적인 구조가 아니라, 조금씩 특성을 달리하는 여러 개의 사업본부의 형태로 재편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사업부 단위의 조직이 하나의 작은 회사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는 데 있었다. 한 해를 이끌어가기 위한 사업계획을 세우고 매출과 매입의 관계를 통제하며, 이에 준하는 범위 내에서 인력을 충원하고 사업비를 지출할 수 있었다. 한해에 2번씩 사업에 대한 실적평가가 이루어졌고 수익율에 따라 사업부 내의 구성원들과 협상할 수 있는 연봉총액이 할당되었다.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 사업부는 별도의 회사로 독립시킬 수도 있다"는 비젼이 그려졌다. 모기업과의 수익쉐어를 하는 방식으로 연계성은 유지하되, 사업부에 맞는 제도와 인사를 보장할 수 있는 좀 더 융통성 있는 조직운영이 가능한 형태가 되는 것이다.
내가 바라던 것을
이젠 이룰 수 있게 될지도 몰라
한동안 잃었던 꿈이 다시 생겼다. 내가 바라던 조직을 만들고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사의 덩치는 점점 불어났고 업무와 구성원의 성향이 다양해질 수록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에피소드가 많아졌다. 한두장이면 끝나던 근무가이드는 나날이 장수가 늘어났지만, 사업부의 개별적 특성에 의해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것들도 함께 늘어났다. 룰이 늘어난다고 운용력이 더 강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1개의 사업부에 유효한 룰은 전체적인 형평성이라는 명목하에 고려될 수 없는 편향으로 전락하고 마는 일들이 생겨났다. 이런 시점에 사업부의 독립적 운영에 대한 비젼은 매혹적일 수 밖에 없었다. 사업부의 구성원들과 함께 노력하고 견뎌내서 1호로 독립하는 조직이 되자. 구성원들은 고무되었고 각종 수치들도 좋은 결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당신의 꿈은 비현실적이에요
1호로 독립하는 사업부를 꿈꾸며 달린 결과, 사내에서 '1일당 최고 매출과 순수익을 내는 사업부'의 영광을 누렸던 적이 있었다. 1회성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번에 걸쳐서 가능성을 타진했고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사업부의 안과 밖에서 좋지 않은 싸인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안에서는 성과에 따른 보상이 구성원들과 충분히 쉐어할 만큼 주어지지 않았다. 순수익에서 기업 전반의 운영비로 떼어가고 남은 것은 인센티브라는 명명이 무색할 정도였다. 구성원들은 전속력을 다해 달리는 것과 적정속도로 달리거나 미달하는 속도로 달린 것의 차이를 체감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실망감은 이직이라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좋은 조건들로 스카웃되는 구성원들을 잡을 수 있는 더 나은 조건은 내게 없었다.
밖에서는 스크린을 탑재한 다양한 디바이스 시장이 아이폰 출시 시점 즈음 하여 그 범위가 좁혀지고 있었다. 사라지는 디바이스들이 생겨났다. 디바이스에 탑재되어 출시되던 UI와 GUI는 모바일웹 시장의 성장에 따라 수요가 줄어들었다. 잠깐 주춤했던 웹 시장이 다른 국면으로 전환기를 맞은 셈이었다. 유지하고 있는 사업부의 구성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질과 다른 자질이 필요해진 상황이었다. 구성원들의 이탈이 없다고 해도 이대로 독립은 불가능했다.
꿈은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 이제 이탈한 구성원들을 대체할 인원을 보충하고, 달라진 시장에 대처하며 수익과 손실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버텨가는 일들만이 남게 되었다. 매주 월요일이면 사업부의 본부장들 이상의 임원들은 기다란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주단위로 계획한 일들에 대한 결과보고가 이어졌다. 새로운 사업부를 맡아 입사한 본부장들도 몇 개월이 지나면 그곳에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했던 다른 본부장들과 똑같은 표정을 하고 앉아 있게 되었다. 다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안일하고 무능한 사람들로서. 그 중에 몇명만이 길고 지루한 단련질을 이겨내고 할당량을 채워냈고 12월의 마지막과 1월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모든 것은 리셋되고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 이런 거 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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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아집은 버려
그렇게 버티려고 애쓰지마.
십년, 딱 십년 만이었다. 인지도를 쌓기 위해 불철주야 일을 하던 말랑말랑하고 열정적인 신생기업에서, 사내 전자결제시스템을 도입하고 기업내 모든 활동이 수치화되며 각종 지원부서들이 생겨나고 관리를 위한 관리가 중첩되는 모든 일들이 룰에 의해 정례화된 중견기업으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은 십년이었다. 내가 스스로와 약속한 십년은 그 변화의 과정 안에 '나라는 개인이 끝까지 버리지 못한 집착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삶을 잠식해 버리는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십년 전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상관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이고, 이 답답한 사람아! 왜 두 계단 밑으로 내려 가려고 하니?"
장렬히 실패했다 전합니다.
그때 상관이 내게 말했던 '두 개의 계단'이라는 것, 처음에는 그 계단이 '돈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이 맨 바닥에서 시작하는 기업은 안정적인 자금흐름을 가지기 전까지 많은 풍랑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유입되고 이탈되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기업의 성장은 가다 서다 뒷걸음치다를 반복한다. 비교적 자금과 사람에 있어서 융통성을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두 가지 모두에서 안정적이지 못한 기업에서 일을 해 나간다는 것은 그의 말처럼 '두 계단 밑에서 뛰는 것과 같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십년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바라보는 '두 개의 계단'은 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건 '두 개의 세계가 만나는 타이밍에서 초래된 운신의 폭이라는 한계'와 '그 타이밍 속의 개인이 지닌 한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개인적인 해석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세계는 유동적인 기업이다. 기업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특성이 수시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성장해 가는 과정 안에서 한시적으로만 바라보면 창의적이거나, 자유롭거나, 규칙적이나, 보수적인 특정한 모습을 띌 수 있지만 그건 그때만 유효하다.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고 그때마다 다른 비전과 다른 자질이 요구된다. 다른 하나의 세계는 유동적인 시장이다. 기업이 제 아무리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시장의 흐름을 주시한다고 해도 통제되기 힘든 방향으로 시장은 늘 바뀐다. 그 변화는 인지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눈치챌만하게 일어날 수도 있고, 전혀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곳에서 발생한 일이 엉뚱한 변수로 작용해 영향권 안에 휘말리고 말 수도 있다. 내가 속한 기업이란 '특정 단계의 특정 시장 안에서 유효한 운신의 폭' 안에 갇혀 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간파하고 감당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개인이 변화하는 기업과 변화하는 시장 안에서 자신이 고집하는 어떤 신념을 고수한다는 것은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다. 특히나 그 기업이 자신을 포함하여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고, 자신이 집중하고자 하는 분야 외에 알지 못하는 다양한 사업 범주를 가지고 있다면 더 더욱 말이다. 그 시점에 유효한 사업에 힘이 실린다. 내가 집중을 하고 말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창업을 할 때 씨앗이 되었던 직원이라고 해서 늘 고정된 위치와 환경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또한 나를 포함한 모든 개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처음에 가졌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투명하게 공유할 수는 없다. 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남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기업, 시장, 나, 타인
변수는 이렇게 많은데
스스로 어떤 계단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계단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하지만 이런 거대한 난제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틀렸고 그래서 실패하고 만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처음의 생각과 점점 달라지는 흐름 속에서 내가 스스로 한 약속이 무의미해 지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십년이라는 숫자는 단지 숫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버틴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아무도 모르는 나와 나 사이의 약속이라는 소모적인 족쇄를 나에게 걸어 버린 건 나였다. 실패를 인정하면 시행착오에 따른 유익한 결과치가 남지만, 인정하지 못하면 영구적인 미결과제만 남는다.
이제서야 폐전을 전합니다
하지만 배웠습니다.
다시 일어나 싸운 법이 아니라,
솔직하게 실패를 인정하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