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의 무게를 버티는 자
나, 업계를 떠나야 할까봐
강남의 한 고층건물 옆 작은 쉼터 벤치에서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던 그의 맞은 편에 앉으려고 할때 대뜸 말문을 연 건 그였다. 그와 나는 A고객사가 맡긴 프로젝트에서 '수행사의 PM'과 '협력사의 기획PL'로서 만났지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함께 일을 했던 것이 족히 5년, 그를 처음 만난 건 G고객사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업체미팅 자리였다. 그는 G고객사의 개발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외주운영조직의 수장이었다. 통상적으로 기획안을 리뷰할 때 개발을 담당하는 쪽은 방어적이고 보수적으로 대응하기 쉽상이다. 기획안대로 개발을 완료하지 못했을 때 압박을 받아야 하는, 프로세스 상의 마지막 역할자에 속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자기방어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가급적이면 기획안대로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려고 노력했고, 오히려 개발쪽의 업무가 늘어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온 기획에 더할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수행해오면서 만났던 개발관련 업무자 중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유연한 파트너쉽을 보여줬던 사람이었던 그와 나는 회사 대 회사를 떠나 제법 호흡이 잘 맞았고 오랜 기간 G고객사의 프로젝트들을 도맡아 진행했다. 환상적 조합이었다.
그런 그가 G고객사의 조직개편이 일어나면서 관리하던 운영조직의 존립이 어려워지자 퇴사하여 개발중심의 SI 회사에 재취업을 했다. A고객사의 프로젝트는 그가 재취업한 회사와 내가 속한 회사가 제안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수주한 것이다. 프로젝트 협업 관계를 맺을 그의 회사에 대해서는 첫번째 협업이라 아는 바가 없었지만, 낯선 사람들 속에 익숙한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새로운 기술의 적용과 고객의 높은 지향을 반영해야 하는 고난위도의 프로젝트였지만 그와 함께라면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유연하고 느긋한 성향을 가진 그가 PM이라면 수행하는 동안 겪을 난관에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바닥에 함께 일해 본 경험만큼 믿을만 한 것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기대와 달리 프로젝트는 삐끄덕대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원활하지 않은 진행에는 한 두개의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첫번째 이유는 고객의 높은 기대치와 프로젝트의 유한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과도한 압박이 때문이다. 유례가 드물게 많은 예산으로 프로젝트를 맡긴 고객은 큰 전략에서 아주 미세한 처리까지 바꾸고 싶은 모든 것들을 끌어 모아 반영해 줄 것을 요구했다. 돈을 쓰는 입장에서 보면 당연할 수 있으나 문제는 구축 프로젝트라는 게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인력을 투입해 결과를 얻어야 하는 지극히 유한한 한계를 지녔다는 데 있다. 진행 중에 예측치 못한 변수를 만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해서 요구치를 빡빡하게 채워 놓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막다른 순간이 와서 일부를 포기하게 되더라도 일단 리스트에 올려두고 시작했다. 한계치를 감안하여 업무의 범주를 잡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업무를 한계치 안에 때려 넣고 압박을 가하는 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이로인해 무언의 야근을 종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밖에 없다는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두번째 이유는 관여자들의 참여지연과 불충분한 사전조사에 오는 계획수립의 지연 때문이다. 함께 할 개발사는 투입할 인력을 필요한 시점에 데려다 놓지 못했다. 이전 프로젝트의 마감을 하고 다음 프로젝트로 옮겨가는 식이었기 때문인데 가장 중요한 PM의 투입조차도 지연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PM을 비롯하여 관련된 인원 전부가 제안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고, 소속된 회사로부터 사전설명도 들은 적이 없었던 상태로 투입되었기에 고객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수행기간 내에 할 수 있는 일의 범주와 단계별 인력투입 시점 등의 계획을 세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예정보다 프로젝트의 윤곽을 그리는 것이 두배 지연되었다. 프로젝트의 윤곽을 그리는 게 지연될 수록 고객의 요구사항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요구사항 수렴은 여기까지'라는 라는 선이 그어지지 않으면 불리해지는 건 고객이 아니라 수행사다. 윤곽을 그리는 시간이 지체된다는 것 자체가 신뢰를 갉아먹는 일이니까 말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 흔들리면 하라면 해야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세번째 이유는 수행자 상호간의 이해관계 상충에 따른 반복되는 기싸움 때문이다. 고객의 요구사항을 받아 화면을 설계하는 기획 담당과 설계된 것을 바탕으로 외부로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실제 프로그래밍을 통해 구현을 해 내야 하는 개발 담당은 물고 물리는 관계일 수 밖에 없다. 설계의 분량과 난이도가 올라가면 개발 업무는 부하가 걸린다. 제때에 프로젝트를 끝낼 수 없는 리스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반면 그것을 줄이기 위해 설계의 분량과 난이도를 낮추면 고객이 만족할 수 없는 아웃풋이 나온다. 만족할 수 없는 아웃풋으로 사업을 끌어가야 하는 고객이 이를 감내하고 프로젝트를 완료했다고 검수확인서에 도장을 찍을 리가 없다. 결국 이 두 이해집단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첨예해 진다. 거기에 프로그래밍이 끝나고 결과물에 대한 테스팅 작업이 시작되면 프로젝트에 관여된 고객사와 수행사 모두가 설계한대로 작동되는지를 검토하는데,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설계의 잘못인지 구현의 잘못인지를 따지게 된다. 이는 잘못의 따라 지연의 책임이 부과되기 때문이며 자신들의 영역을 방어하기 위한 상대적인 공격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어제 큰 소리를 쳤던 쪽이 오늘도 큰 소리를 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쪽은 암암리에 잘못을 한 쪽이 되기 쉽다.
네번째 이유는 달라진 업계의 근태 분위기에 따른 위기감 체감의 불균형과 반목 때문이다.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문화가 비교적 지켜지지 않는 것이 IT업계인 것은 맞지만, 무조건 따르던 것과 달리 불만을 토로하거나 과감하게 원칙을 고수하고 저녁시간의 자유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저녁시간의 자유를 선택하는 사람들 중에는 오랜 기간 누적된 야근의 후유증으로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는 한계치에 다달은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배우자와 역할을 분담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할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저녁시간의 자유란 없기에 결국 남아서 야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간에 차이는 위기감 체감과 그에 따른 책임감의 유무로 변질되고 만다. 안그래도 무언의 야근을 종용하던 고객은 자신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것을 수행사의 관리와 통제력 부족으로 해석한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모두 안일하게 대응한 까닭으로 몰아갈 체비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침묵하는 건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두고 보고 있을 뿐이다.
다섯번째 이유는 서로에 대한 공격과 바닥난 배려심에 의한 자기환멸 때문이다. 결국 고객사의 너무 높은 눈높이, 수행사 주먹구구식 운영관행, 실무영역 간의 좁혀지기 힘든 간극, 사회적 통념 변화와 무관한 근무현실 등 다양한 이슈들에 의해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고통받게 되는데 문제는 서로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라는 것이다. 각 개인과 개인으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도 가지만 어느 한 쪽에 소속된 개인은 다르다. 자신이 속한 기업을 대변하기 위해서라도 심적인 이해와 상반된 태도를 취해야 할 때가 있다. 본의 아니게 악역을 맡아야 하는 개인들은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둘러싼 스트레스 망을 탈출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가장 심한 자기환멸에 시달려야 하는 건 물어보나 마나 프로젝트를 총괄해서 책임을 지고 있는 PM이다. 어느새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능한 사람이 되어 있다. 미안하면서도 억울해진다. 하지만 억울하다고 말하면 무능함에 비겁함이라는 멍에까지 따라오기에 함구할 수 밖에 없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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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 부장님이 탓인가요?
G고객사의 프로젝트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었고 수년간 자신과 함께 해온 팀원들과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시스템을 건드려서 완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A고객사의 프로젝트의 경우 특정 기간 동안 수많은 대내외적 이슈를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함께 하지 않았던 낯선 동료들과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시스템을 건드려서 결과물을 내야 했다. 전혀 성격이 다른 프로젝트였지만 그에게 자신이 그 일에 적합한지를 판단할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나이가 꽤 많은 편에 속하는 경력 많은 엔지니어이자 관리자였고 그건 그를 고용하기 위한 비용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프로젝트의 난이도는 예산에 비례하고 예산이 많은 곳에 고용비용이 높은 관리자를 배치하는 것은 필연이다. 몸값이 높은 경력자는 단지 유사 사업에 참여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실제로는 매우 다를 수 있는 업무에 배정되어 난이도에 준하는 스트레스를 견뎌야 할 책임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 업계의 생리다. 무엇이 그의 탓이란 말인가? 주어지지도 않은 선택권한을 주장하지 못해서? 인간적인 환멸을 느낄만큼의 스트레스지만 참지 못해서?
결국 그는 프로젝트의 종료를 2개월 앞두고 참을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 모든 책임을 짊어진채 퇴사했다. 그가 없는 2개월은 모든 문제들이 동시다발로 폭발하는 카오스의 세계. 그나마 '프로젝트는 언젠가는 끝이 난다.'라는 진리에 기대어 버텨낸 후, 고객사도 개발사도 내가 속한 회사도 내부적으로 인원 손실의 상흔을 입은 채 마무리를 지었다. 서로의 노고에 감사하는 박수소리 하나 없는 적막한 엔딩.
사실 그가 퇴사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시는 이 업계에 발 붙이고 싶지 않다면서도 그는 되돌아오게 될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중도 포기라는 결격사유가 그의 이력에 남아 다음 회사를 선택하는데 제한이 따르겠지만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없었으니까. 천진난만하게 여름 캠프를 다녀오겠다고 조르는 딸에게 이제는 할 수 없다고 말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버티지 못한 댓가를 치루더라도 잠시만 마음을 추스리고 돌아오겠다고 말이다. 함께 일해 온 시간이 얼마인데 처음으로 낯선 뒷 모습을 보았다. 어느새 내려앉은 흰 머리카락도.
일 마무리 되면 술이나 한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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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어떻게든 살아남아 볼께요.
까짓 거 다 잊고 쉬어요.
남겨놓고 떠나서 야속한데 미워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 그는 절대 이럴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 그의 결정 속에 얼마나 많은 자기 비판이 있었을지, 나 역시도 그처럼 매일을 나의 한계에 치를 떨고 있었기에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포기를 해서 감당해야 할 댓가 중에 그것보다 더 힘든 게 있을까? 프로젝트의 적막한 엔딩 속에 그가 소환된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SI기업의 제안관련 부서에 소속되어 있는 남편은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 늦게 귀가를 했다. 이번 제안서는 규모가 커서 한달 이상 투입되어 있었다. 수행 프로젝트나 제안 프로젝트나 어쨌든 투입은 되어 있어야 개인 별로 할당된 참여 공수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프로젝트가 없어서 사무실에 앉아 눈치를 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공수를 채우지 못한다는 것은 잉여인력이 되는 것이고 알게 모르게 자발적인 퇴사를 종용받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투입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란 없기에 함께 일할 사람들의 성향이 어떨지 일하는 동안 분위기는 어떨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전반적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높아졌고 오랜 시간 야근을 달고 살았던 까닭에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다보니 각 개인들의 업무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 얘기할 것도 없다. 남편 자신도 충분히 체감하고 있으니까. 과도한 업무을 하면서도 눈치밥 먹는 일상의 반복.
나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허구한 날 이것도 못해 먹겠다.
여느 때라면 "오늘은 또 누가 괴롭혔어?"라며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물들의 진상털이를 거들다가 "그래도 다닐 수 있을 때까지는 다니는 게 여러 모로 이득이다."라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 마무리를 지었을 것이다. 어차피 "그럴 거면 때려 치워!"라고 말해도 결과는 같다. 내가 할 말을 본인 스스로 하게 만드는 것만 다를 뿐. 하지만 이날은 그 흔한 여느 날이 아니었다.
어떻하냐?
불쌍한 우리 아빠야
다가가 남편의 꼭 안아주려고 했다. 그런데 말이 터지자 마자 눈물바람이 되고 말았다. "왜? 그 프로젝트 뭔데? 누군데?" 얼떨결에 토닥토닥은 남편의 몫이 되어 버렸다. 그게 아니라고. 그냥 당신이 좋은 아빠인 것 같아서 그런다고. 당신 참 힘들게 산다고.
누군가의 좋은 아빠
새로운 프로젝트, 백지에서 시작하고 낯선 사람들과 만나며 "이런 일은 또 처음이네!"하는 것이 낙이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낙을 짐으로 바꾸어 놓는다. 집중력이 떨어져 방금 고친 문서 다시 고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늦은 오후만 되어도 머리 속 회전바퀴가 자동으로 정지하는 것을 느끼면서 하루 하루 무게가 더해지는 짐. 그래도 계속 걸어나가는 건 가족의 웃음을 지켜주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