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절된 마음 바로잡기 - 관찰, 분리, 통역
쿨한 방관자 A군, 따뜻한 참견꾼 C군, 그리고 저는 무심한 중재자 B 양입니다. 제가 B인 것은 짐작이 가시겠지만 가운데 끼어 있기 때문입니다. 별 뜻 없어요. 저는 무심하니까요.
쿨한 방관자 A군은 실리적인 사람입니다. 적당히 선을 지키고 이성적인 판단을 해내는 능력을 가졌지요. 이해득실을 따져 얻어야 할 것을 취하고 효율적인 방안을 찾아내며 지체 없이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탁월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철저하게 너와 나는 남이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할 만큼 필요에 따라서는 차갑게 선을 긋습니다. A군이 이렇게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은 같이 얽혀 들어가서 겪는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따뜻한 참견꾼 C군은 감성적인 사람입니다. 스치면서 나눈 대화나 표정에도 눈길을 주고 살피는 것이 몸에 배어 있지요. 모든 사람에게 살갑게 다가가 말을 붙일 수 있는 그런 넉살을 따라 올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때때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버럭 하는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할 만큼 갑자기 분노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C군이 버럭 하는 것은 마음이 뭔가 불편하다 느낄 때이고 집요한 건 반드시 그 자리에서 자신이 납득할 해결을 찾아야 하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무심한 중재자 B양인 저는 실리적이기엔 충동적이고 감성적이기엔 무뚝뚝하지요. 상남자라는 소리는 두 남자보다 B양이 가장 많이 듣습니다. 이런 B양이 어떻게 중재자가 될 수 있을까 싶지만 어렵지 않습니다. A군과 C군이 서로를 향해 언성이 높아지면, 두 사람이 B양을 끌고 가든 B양이 두 사람을 끌고 가든 같은 테이블에 앉고 마니까요. 세 명을 포함한 주변인들의 평안을 위해 평소에 거의 말이 없는 B양이 거의 예외적으로 말을 많이 해야 되는 날이 도래한 거죠. 올 것이 온 날이기도 하고요.
무심한 중재가 입장하면 A군과 C군은 마주 앉습니다. B양은 주로 우리가 테이블에 앉게 된 주된 요인을 제공하는 C군의 옆자리에 앉는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데나 앉았네요. 그저 '문에서 가까운 자리'라는 게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이 문을 박차며 나가고 싶은 거죠. 이 테이블에서 B양이 하는 일의 핵심은 '관찰, 분리, 통역'입니다. 반드시 순차적이지는 않아요.
'관찰'이라고 적고 '표정 읽기'라고 읽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가장 먼저 살피지요. 무엇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인지 알아야 하니까요. 먼저 쌍방의 얘기를 들어 봅니다. 분위기가 점점 고양되는 가운데 각각의 표정이 바뀌는 지점에 '내가 A 군이라면, 내가 C 군이라면 어떤 감정이 들까?'를 생각하면서. 이슈를 제기한 C군의 주된 문제의 감정은 '화가 나. 불안해. 서운해'입니다. 응용하면 '나를 배제해서 화가 나. 나만 나쁜 사람 될까 봐 불안해. 내 말을 무시해서 서운해.' 자기변호를 해야 하는 A군의 주된 감정은 '답답해. 피곤해. 짜증 나'입니다. 응용하면 '네가 못 알아 들어서 답답해. 네가 한 말 또 해서 피곤해. 네가 자꾸 말을 바꾸니 짜증 나.' 두 사람의 공통된 문제의 감정은 '억울해'가 가장 많아 보였어요. 하지만 C군이 '나만 손해 봐서 억울해'라면, A군은 '나를 오해해서 억울해' 였죠. '억울함'만큼 비참한 게 없더라고요. 손해 봐서 억울하다고 하면 너무 쪼잔 해지는 건가 싶어 비참해지고, 오해해서 억울하다고 하면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비참해져요. 해서 '이번 것은 넘어가'라고 하거나 '내가 잘못한 거면 미안하고'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억울해 보이네요. 본심과 다르니까요.
'분리'라고 적고 '팩트 찾기'라고 읽습니다. 관철시키고 싶은 주장과 그것을 제기하게 되기까지 벌어진 일들. 그리고 벌어진 일들의 실제 팩트. 원인이 있었으니까 결과가 있을 게 당연할 것 같지만 감정에 휩싸인 상황에서 원인이 되었던 사건은 실제의 팩트와 다를 수가 있더라고요. 이날의 주장은 "의사 결정의 권한이 있는 사람과 상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사람을 배제하고 논의를 진행했다"였습니다. C군의 직속 구성원이 A군에게 업무 과부하에 따른 인원 보강을 상의한 모양입니다. A군은 구성원에게 '업무량 대비 어느 정도의 인원 보강이 필요한 지 먼저 파악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말해 주었고요. A군과 C군의 구성원끼리만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C군은 그 의사결정에서 소외당했군요. 사실일까요?
인원 보강에 있어서 2가지 이슈가 있습니다. '보강할 상황인지를 확인하고 추가로 인원을 배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일 때 적합한 가용인원을 배정하는 것'과 '추가 배치에 따른 투입인력 비용 상승을 고객과 상의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불가한지 판단하여 추가 비용을 요청할지 업무량 조정을 요청할지를 판단하는 것'. 전자는 C군의 업무고 후자는 A군의 업무입니다. 두 사람 모두 관여될 이슈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여가 다 필요한 일을 C군의 구성원은 A군한테만 상의한 것일까요? C군의 구성원은 A군과 C군의 사이에 있는 B양의 자리 부근에서 A군을 바라보는 각도로 얘기를 꺼냈습니다. A군과 C군 모두 함께 있는 공간이었네요. C군의 구성원이 A군을 바라본 것은 A군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앉아 있었던 C군과 B양인 저와 달리 걸어와 멈춰 선 C군의 구성원은 동일하게 서 있는 A군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이날 배제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요. 팩트는 그것입니다.
'통역'이라고 적고 '앵무새 되기'라고 읽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B양의 입을 통해 전해집니다. 누가 들어도 명확한 팩트에 간단한 해결책이면 되는 것을 가지고 왜 들 얼굴을 붉히게 되었는지 이해는 하고 가야겠지요. B양의 무뚝뚝함이 활용해 아무 감정 없는 듯 A군과 C군의 감정을 풀어 봅니다. "C군은 내가 관여된 일을 나보다 A가 먼저 대응하게 되어 배제된 것 같아 화가 나 것 같은데 맞나요?" "A군은 같은 공간에 있어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상황이라 배제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일부러 뺀 것으로 오해해서 억울한 것 같은데 맞아요?" 이런 말이 각자의 입이 아닌 B양의 입을 통해 전해집니다. "세 사람이 함께 논의를 하고 결정을 하자는 게 우리의 룰이었으니 그건 지켜져야 합니다. 오늘은 약간의 오해가 있었지만 혹시라도 앞으로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배제된 자리에서 의사결정이 필요한 급한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남은 한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해주고 오해하지 않도록 배려하기로 해요. 그리고 오늘처럼 배제한 게 아님에도 오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있을 겁니다. 그때는 배제되었다고 생각이 든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먼저 얘기를 하도록 합시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런 오해가 있었는지도 모를 수 있으니까요" 분위기는 정리가 됩니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이라는 것은 언제나 팩트를 볼 수 없도록 눈을 가리고 상대를 압박함으로써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이를 수 있는 자리를 파투 내어 버립니다. 서로 감정이 상한 당사자끼리는 '관찰, 분리, 통역'이 불가능할 때가 많지요. 하여 작은 일로도 함께 타고 항해하는 배를 가르려고 할 수 있죠. 중재자라는 건 그럴 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은 B양이 중재자가 되었지만 다른 일은 A군이 혹은 C군이 중재자가 됩니다. 중재자는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한번 더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팩트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물론 늘 이렇게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되는 날만 있지는 않아요. 특히 조심해야 하는 날도 있죠. 점심 밥을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 테이블에 앉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깜빡한 날이죠. B양이 무심한 중재자에서 지구멸망의 파괴자로 변신하는 건 순식간입니다. 따뜻한 C군은 맛집을 찾고 쿨한 A군은 운전대를 잡습니다. 서두르는 게 좋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