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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Jul 02. 2020

어지간히 따로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

더 이상 당신과 같이 지낼 수 없다고 말해야 할 때, 어떤 말이 좋을지. 
그것은 물기를 막 닦은 유리잔처럼 빛나면서도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단정해야 할 것이지만, 
더 이상 같이 지낼 수 없을 것 같은 게 
이렇다 할 이유가 없는 것이어서 충분히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담은 말을 꺼내야 할지, 
소극적인 말 몇 마디를 쏟아붓고 그쳐야 하는 건지. 
살다 보니 당신이 보였습니다.라는 첫 문장으로 편지를 쓰면서 
당신 하고는 이토록 소박한 삶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라든가 
어지간히 따로 지내는 것이 아름답겠습니다.라는 말을 적는 건 어떨지 
아무리 긴 시간을 꾸민다 해도 더 이상 같이 지낼 수 없다는 것은 
공기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것일 테니,
근사한 말을 동원해 마술을 보여줄 것도 아니라면 
게다가 장엄한 결말을 내기엔 주인공들이 지쳐 보이므로, 
불확실한 것으로 연명하는 것은 어쩌면 죽음이기도 한 것이니 
안녕, 안녕, 안녕이라고 백번 말해줄게. 
<내 옆에 있는 사람> 어지간히 따로가 아름답겠습니다 



글을 읽었을 때 참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백번이나 안녕이라고 거듭 말해야 할 단호할 수 없는 이별의 고통과 배려에 먹먹했고, 그런 이별을 가져 본 적 없는 지난날에 먹먹했다. 그것을 행운이라고도 불행이라고도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저 먹먹했다. 


이별인 듯 이별 아닌 이별은 해 본 적은 있다. 서로가 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이별한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좀 쉴게'라고 말했었고 쉬는 게 길어지는 것이, 그러다 서로의 삶이 상대의 관심 밖에서 달라지는 것이, 아무렇지 않아 지는 것이 내게는 이별이었다. 


상대에게 내 뒷모습을 처연하게 보여주지 않고 뒷걸음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다가오는 것인지 멀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정지 컷으로 남겨 놓은 것이 나의 이별 방식이었다. 잊어달라고도 잊지 말아 달라고도 하지 않는 할 용기가 나지 않는 그런 것, 영원한 미제인 채로 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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