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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Jul 29. 2020

밀어내고 싶은 순간

못 버틸 만큼 쓰고 싶어 지는 때

  "언제쯤 글을 쓸 수 있을까?"라고 친구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친구는 "아마도 글을 쓸 때가 되면 스스로 알게 될 것 같아. 도저히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버틸 만큼 쓰고 싶어 지는 때, 그럴 때 써지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 대답이 와 닿았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포화상태가 되면 어떻게든 그것을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생겼을 때 그것에 몰입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았던 것처럼. '언젠쯤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말 끝에 펜을 들지 못한다면 아마도 아직은 꺼내놓을 정도로 내 안에서 차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 가는 시점, 그때까지는 하루에 한 두 개의 글은 쓸 수 있었는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도저히 글이 써지지를 않았다. 그동안 써 놓았던 글들을 뒤적이다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가 무언가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들어 글쓰기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가 되곤 했다. 마치 내 앞의 모레 알 같은 글감들을 누군가가 입으로 불어 날려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내키지가 않는다'라는 표현이 적당한 것 같았다. 생각은 나지만 글까지는 아닌 그런 느낌.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문득 그것이 궁금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우물을 가슴에 품고 살까? 아니면 삶의 구조 자체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일까? 아!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 그것도 한몫할 것 같다. 내게는 글이 욕구일 수는 있어도 재능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의문을 품고 토요일 저녁 북카페를 찾았다. 이병률 시인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시인은 4가지 이야기 꼭지를 가지고 강연을 풀어나갔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큰 줄기를 중심으로 내게 유난히 와 닿았던 내용을 요약하면 이랬다. 참고로 순서대로 담지 않았다. 내게 유효했던 말을 중심으로 그룹핑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듣는 내내 작가는 말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를테면,


첫째. 글을 쓸 때 꼭 지키는 원칙은?


  "글을 쓸 때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전달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잘 쓰는 사람과 술도 먹고 글도 돌려보고 싸워도 보고 울어도 봐라. 그러면 내가 본 것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여러 시선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에게 이해받지 않으려고 글 쓰는 작가는 없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 말의 끝에 "내가 글을 쓰게 만드는 이유는 '자기 노출증' 때문이다. 나를 남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수 없고 예술을 할 수 없다."는 말은 내게 어떤 의미에서는 정곡을 찌르는 면이 있었다. 나는 애써 남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내것이 아니라고 밀어내왔던 것은 아닐까. 이 지점에서 나는 좀 더 솔직해 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어쩌면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도 글을 쓸 수 있는 것만으로 나는 괜찮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다.


  "쓰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방임한다. 밀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글을 보내고 난 후 할 일이 없을 때 글을 쓰면 자신이 깎인다. 뭘 하고 놀까, 뭘 할까 하는 것은 뭔가를 모으는 것이다. 무조건 매일 쓰면 한 권의 책을 탄생시킬지언정 내 질감과 폭발력을 만들 수 없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또 그 끝에 "글을 쓰는 원동력은 술인 것 같다. 편하지 않은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술을 썼다. 밤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뭔가를 계속 쓰면 그 사람을 좋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비워 놓는 것 안에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이어 말한다. 어떤 이는 말을 하다보면 더욱 더 할 말이 생겨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계속 생각과 감정을 자기 안에 쌓아두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트인듯 펼쳐 놓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후자다. 말을 자꾸 하다보면 어느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도달하고 마는. 말하는 스타일과 글을 쓰는 스타일에 나라는 사람은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둘째. 여행의 감정과 생각을 담아내는 노하우가 있다면?


  "에피소드가 풍성한 이유는 철저히 혼자 다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다니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혼자 다녀야 새로운 경험이 생긴다. 뭔가를 쓰기 위해 상황을 만들어가는 여정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되자. 인간적으로 살지 않으면 뭐든 쓸 수 없다. 이야기는 때로 숙성이 필요하다. 당장에 쓸 수는 없지만 수년이 지나면 짙어져서 이야기를 쓰게 된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는 사실 여행을 많이 해 보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혼자하는 여행이란 하루 동안 거리를 쏘다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혼자'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알 것 같다. 그건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허기 같은 거였다.


셋째.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두 문장만 이어지면 이병률 일 것이다. 라는 욕심을 냈다. 문장을 여행했다. 어떤 문장 표현법이 나와 맞는가. 문장 안에 나만의 냄새를 올려놓아야 한다. 동물이 영역표시를 남기듯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어떤 이는 글을 읽기만 해도 누구의 글인지가 티가 난다. 나는 아니다. 그것이 내게는 어떤 면에서 열등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장을 탐색할 생각들은 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어느 날 신내리듯 자신만의 색깔이 찾아질리 있겠는가. 무엇을 하지는 않고 무엇을 바라는 것만 해 왔던 것 같다.


넷째. 에세이 저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글 쓰는 것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마음이 울렁일 때가 있고 그것을 기록할 때 위로를 느낄 때가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게 했다. 글을 써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나를 위해서 글을 썼는데 사람을 가지게 된다. 에세이에서 좋은 글은 친구에게 말하듯이 쓰는 글이다. 재미있고 친절하게 이야기를 하는, 책을 덮을 때 '이 문장이 나를 살렸네' 싶은 것이 담기는 글이다. 반대로 자기만 아는 글이나 긴 글은 좋지 않다. 멋을 부리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꽂히는 것을 명료하고 살아 있게 쓰는 것, 전달이 중요한 것 같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직 이렇다하게 글을 효용을 말하기에는 경험이 짧아도 너무 짧지만. 해서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끼고 있던 안경이 바뀌어서 보이는 세상이 달라지면 살아가는 방법도 바뀌게 되겠지. 자신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라는 증상, 그건 먹은 것이 없으면서 자꾸 게워내려고 애를 쓰는 일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연한 권태는 더부룩한 소화불량을 안고 사는 위장병 같을 수도 있겠다. 삶을 통해 내게 축적된 것들을 한번 게워내고 나니 빈 속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새로운 것, 낯선 것, 생각이 머무르게 되는 것과 가까이 지내지 못했다. 그 채로 나는 스스로를 채근한다. "벌써 식상해진 거냐?"라고 말이다. 고작 몇 개의 글을 쓰고 이 지경이 된 것을 보니 글을 쓰기에는 틀려 먹은 인간인가 보다 싶었다. 이런 때 친구의 말과 시인의 말을 나를 각성시킨다.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어라.
밀어내고 싶은 순간이 올 때까지.


  내버려 두는 시간 동안에 낯선 것들이나 그리웠던 사람들 그리고 잠자코 바라본 적 없는 한때에 머물러야겠다.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바구니에 담고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아야겠다. 글은 어쩌면 그런 일련의 과정들 끝에 생각이 발효되어 얻어지는 산물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너 정거장은 족히 걸릴 거리를 뚜벅뚜벅 걸었다. 나를 비워 놓는 시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며 한편으로는 그 비워 놓는 시간에 새로운 것을 찾아 길을 떠나는 여정을 삶 안에 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했다. 시인이 참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 '이렇게 사는 것이 나 하나만도 아닌 걸'이라는 말은 부러움에 부러움을 쌓는 일이 될 뿐이다.


  꿈을 꾼다. 날이 아주 춥지도 덮지도 않은 어느 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횡단 열차에 몸을 싣고 달리다가 멈춰 서기를 반복하며 불현듯 떠오르는 글을 적고, 잊고 싶지 않을 만큼 탐나는 풍경을 스케치북에 담고 싶다. 때때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이 두려웠다가, 의지가 되었다가,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워 울음이 터지는 모든 것들을 가슴에 담고 돌아오고 싶다.  그리고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채에 걸러진 것들을 만지작 거리며 가슴에서 싹 터 오르는 잎을 키워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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