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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Aug 12. 2020

기억을 묻히는 일

관계가 역사다

  일 년에 두 번, 반드시 치러 내어야 할 과제가 있다. 폭염으로 데워진 공기가 폐 속까지 파고들어 이글거리거나 손 하나는 무조건 우산에게 저당 잡혀야 하는 7월과 8월 한 여름, 내가 세상에 나와 내 눈으로 삶을 이해하고 살아갈 기회를 준 두 분의 기일을 챙기는 일 말이다.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장을 보고 반나절 이상을 서서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그날 밤은 넋다운이 되어 골아떨어졌다. 한 해 중에 고작 이틀을 쓰는 일, 살아계신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그 시간은 새발의 피만큼도 안 되는 마음을 쓰는 일이 아닌가. 나머지 시간은 내내 생각하지 못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빈자리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보고 싶은 마음을 품는 건 시간이 꽤 흘렀어도 버거웠다.


  두 분은 3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로 세상과 작별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가고 남은 사람이 3년 안에 유명을 달리하면 금실이 좋은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가난이라는 재난으로 서로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못 건넸던 두 분에게도 내가 모르는 로맨스는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그나마 각자의 기일마다 두 공기의 밥을 올리는 마음이 가벼워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여전히 떠올리기 싫은 대상 일리 없다. 가난이 쓸모를 다 했을 그곳에서 못다 한 얘기들을 충분히 나눈 후 나란히 손을 잡고 딸의 집에 마실 오듯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내 마음 편하자고 쓰는 소설이다.

 


  아마도 두 분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하지 않음으로 내게 짐을 지우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라 결혼을 해서 독립한 딸이 자신들의 기일에 제사상을 준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 출가외인, 그 낡아빠진 오류들이 고쳐지는 세상을 두 분은 본 적이 없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채 서른이 되기도 전에 가셨으니. 물론 나도 처음부터 두 분의 기일을 챙긴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세상의 오류가 고쳐지고 있는 과정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내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부터였던 것 같다.


  친가와 달리 외가는 외손주가 태어나기 전에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셔서 아이에게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무하다. '사람의 생존에 있어서 유효기간은 육신의 마지막 소유 일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의 추억이 닳아 없어지는 때에 달려 있다'라고 생각한다. 나의 기억 속에 그리고 내 아이의 기억 속에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라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올라오기를 바랐다. 그것을 물어주는 아이를 기다렸다. 때가 되어 물어주니 고마웠다.


  부모 없이 태어난 이는 없다. 아이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우리 역시 그렇다. 아이에게 아버지인 남편을 키워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알아야 아버지의 삶이 이해가 될 것이고, 어머니인 나를 키워낸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알아야 어머니의 삶이 이해될 것이다. 그래야 그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점점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는 삶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 완성형인 사람은 없다. 나의 위의 위에서 시작해서 나의 아래의 아래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내가 조금씩 여물어져 드러나는 것을 스스로 바라보는 과정 안에 있을 뿐이다. 내 아이도 나도 다르지 않다. 그것을 아는 게 어른의 시작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하지 않았다. 아이는 스스로 알아낼 것이다. 나는 아이가 맞출 퍼즐 한 조각을 쥐어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남편이 가르쳐 주어야 겨우 따라 하던 아이가 지금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다음 순서를 알고 움직인다. "이제 제법 합이 잘 맞는 것 같아"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제사 준비를 거들고 술을 잔에 담아 올리고 상을 물린 후 마무리까지 해 내는 아이를 보며 남편은 말한다. 한편으로는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으로 날아갈 날개가 제법 자라난 뒷모습에 때 이른 그리움이 내려앉는다. "다들 고생했네" 가족이 돌아가며 수고로움을 챙긴다. 일 년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날 것이다. 내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 나는 기억을 묻히는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기억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 세 식구의 기억이기도 한 것들을 서로에게 묻히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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