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얄리 Oct 26. 2020

가족, 보조적 시야

전방 응시 중심적 질주의 안전장치  

  누군가 나에게 '결혼이 반드시 필요한가?', '아이는 꼭 낳아야만 하는 걸까?' 하는 질문을 했을 때, 이미 기혼자이자 이제는 미혼자가 되기는 틀려 버린 입장에서 딱히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삶에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지는 것들이 존재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반드시' 내지는 '꼭'이라는 게 붙어야 할 게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 말을 꺼내는 이의 마음이 그 단어에 투영되어 있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주로 상대가 넌지시 당위성을 덜어내어 주거나 더욱 공고하게 힘을 보태 주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그러니 쉽게 답을 하기가 어렵다. 내정해둔 답이 궁금하기도 했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느끼는 선에서의 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타인의 삶의 궤적과 내 삶의 궤적이 다르고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아닌 타인의 삶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느낀 것대로 생각할 능력이 없다. 그건 그 사람도 마찬가지, 내 삶 안에서 내가 느낀 것을 그대로 읽어낼 능력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설령 상대가 상당히 적절한 포인트를 읽어냈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포인트는 내 것과 다르다'라고 여기면 무효니까. 그러니 내가 무슨 답을 하더라도 그건 온전한 답이 아닐 것이다.


  사실 필요한 점을 부각하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나이 들고 약해지면 혼자보다는 아무래도 동반자와 함께 서로 기대며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내지는 "나와 동반자를 닮은 아이가 커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이 세상에 남기는 거 하나 없이 가는 거보다 낫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모두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미래의 가정일 뿐이다. 나도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라는 말이다. "이삼십 년 더 살아보고 얘기해도 되겠는가. 그게 정말 나은 삶인지." 너무 늦은 답이겠지. 무엇보다 미래의 어느 날을 위해 현재의 삶을 양보하는 것이 괜찮을 것인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삶 속에서 경험한 미래란 늘 현재의 예측과는 달랐다.  


  불필요한 점을 부각하려면 아마도 "꼭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가정을 이루어야만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의미 있어지는 건 아니지. 나는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먼저고 결혼이나 아이를 낳는 건 선택일 뿐이겠지"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선택한 쪽이 아닌 다른 쪽은 살아본 적이 없다. 그건 과거를 다시 고쳐 써 보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으로 실현 불가능한 과거의 가정일 뿐이다. 더 궁극적인 의문도 있다.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란 내 주변의 사람들의 유무와 깊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차원의 것일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조금 더 벌 수는 있을까. 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사유의 여유를 가져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더 쉬운 방법도 있다. "항상 집에 들어가면 사람이 있으니까 외롭지 않더라"내지는 "결혼해보니까 내 삶이란 건 없더라"로 필요성이나 불필요성에 대한 답을 매우 간단하게 끝낼 수도 있다. 어쩌면 가장 현재 중심적인 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도 경험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다. 경험의 일부는 질문을 받은 시점의 내 심리상태나 삶의 만족도에 따라서 과장되거나 혹은 은폐되기도 한다. 그러니 일부조차도 온전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질문에 의해 얻어진 경험의 일부 속에 묻은 과장이나 왜곡의 답으로 질문을 한 사람은 자신의 현재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일도 생겨난다. '외로움'내지는 '내 삶', 생각보다 이것에 대처하는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바라본 적이 많지 않았던 것도 같다. 여하튼 내가 답을 하지 못한 것은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겠다.  



  

  쉽게 답을 할 수 없다고 해서 내게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노코멘트하고 난 후 내 안에는 차고 넘치는 생각들이 생겨난다. 어쩔 수 없이.


  

  그저 어렴풋이 내가 선택한 삶에서 결혼과 출산은 지극히도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에 몰입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필요 불가결하게 타인을 바라보게 만드는 '사이드 미러' 혹은 '백미러' 같은 것이었다. 부속되어 있는 미러를 보지 않아도 차는 달려갈 수 있겠지만 미러를 본다는 것은 더 넓고 많은 시야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래 봐야 앉아있는 좌석을 기준으로 한 방경일 뿐일지라도 앞만 보는 것보다는 조금은 시야가 달라질 수는 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 보지 않는 일이 많지만, 손에 익으면 무의식 중에서라도 보게 된다. 보지 않고 달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말이다.  


  한쪽의 성(젠더)을 차지하고 나의 입장에서 반대의 성이 가질 수 있는 생각 그리고 고민의 차이와 공통점을 본다. 때로는 전혀 달라서 때로는 뿌리가 같아서 싸움과 이해를 반복했다. 반드시 거칠 대립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다. 물론 많은 시간 침묵이라는 도구로 외면한 끝에. 고통은 나와 상대를 좀 더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아프고 싶지 않아서 혹은 아프게 하기 싫어서. 싸우기 위해 혹은 이해하기 위해 함께 많이 걸었다. 그 걸음의 횟수가 늘어난 만큼 내 주변 사람들 중 나와 입장이 유사한 사람이나 그 사람의 상대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났고, 그 이해는 나의 오늘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결혼이란 그런 점에서 '사이드 미러' 같았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향해 나아가는 일상 속에서 지난 시간들의 사건과 감정들은 원치 않게 지워지거나 왜곡된다. 내가 걸어온 길이라고 해도 때로는 남의 길처럼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런 면에서 본의 아니게 삶에서 희미해져 버린 나의 과거를 내 시야에 다시 가져다 놓는 존재였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과거는 어린 시절의 생각과 감정 안에 포장되어 있고 대게는 내가 간직하기 편한 방식으로 보관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를 통해 나는 과거의 나와 부모의 시각을 동시에 재해석하는 경험을 하게 되곤 했다. 내가 어떤 아집으로 내게 불필요하다고 한 것들을 밀어냈는지, 또 나의 부모가 내게 해 준 행동과 말 뒤에 어떤 현실과 생각 그리고 감정이 있었을지,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삭제와 왜곡은 복구되거나 정정되었다. 그런 점에서 아이는 내게 '백미러' 같았다고 할 수 있겠다.




  삶에 있어서 결혼과 출산이 '사이드 미러' 내지는 '백미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게 누구에게나 유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운전이 미숙한 사람에게는 그저 옆이나 뒤를 바라본다는 것, 앞을 잠시 보지 않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문득 앞을 보다 갑자기 등장한 장해물에 급정거를 하게 되는 그런 위험. 삶에서 나는 미숙한 운전실력으로 번번이 급정거를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다만 '수십 년을 관찰해 온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건, 삶 속에서 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내 시간과 생각 그리고 감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타인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자기 몰입의 과부하 유형이라는 것이다. 그 과부하로 삶을 인식하는 방경이 상당히 좁혀진 채로 살아가기 쉬운 내게는 유효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더군다나 관심이 생각에서 말 또는 행동으로 표현되는 출구가 지극히 좁은 나라면 더욱더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화하는 껍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