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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Aug 20. 2020

길들이는 시간

사람들은 거의 잊어버린 말이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마음으로 봐야 보인단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거든.
네 장미가 중요한 존재가 된 건,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



넌 지금은 많고 많은 남자아이 중 하나일 뿐이지. 난 네가 필요하지 않아.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지. 너에게 난 많고 많은 여우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린 서로 필요해진단다. 넌 내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나도 네게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여우가 되고. (중략) 예를 들어,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설렐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난 가슴이 두근거려서 안절부절못하고 걱정을 할 거야. 행복의 대가를 알게 되겠지!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잖아. 넌 의식을 지켜야해. (중략) '의식'은 어느 하루를 다른 하루와 다르게 만들어주고,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거야. 가령 사냥꾼들도 의식이 있어. 그들은 목요일마다 마을 아가씨들과 춤을 춰. 그럼 목요일은 흥미진진한 하루가 되는 거야! 나도 포도밭까지 긴 산책을 나갈 수 있어. 만일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추러 간다면, 모든 날이 다 똑같아져버리고 나는 결코 쉴 수 없겠지. <어린왕자 중에서>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사람들은 거의 잊어버린 말이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나의 어느 날이 다른 날과 달라지고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 중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지는 건 내가 그것을 위해 쓴 시간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되는 건 시간 뿐인 것 같다. 해서 '의미'로 남겨지기 위해 쓸 수 있는 것 중 가장 유효한 것이 '시간'일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비축한다고 해서 내게 조금이나마 더 남게 되는 것도 아닌 것. 나는 그것을 무엇에게, 누구에게 쓰고 있는 것일까? 그 무엇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쓰고 있지 않다면 무료하고 무기력한 것이, 끝도 없을 것처럼 외로운 것이 내 몫이 되는 건 그러니까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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