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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Oct 28. 2020

간헐적 무료

삶에 대한 감수성 개선 처방

매우 무료한 날이었다.
어제처럼, 또 그제처럼.


  오래된 블로그를 뒤적거렸다. 중고등학교까지는 줄곧 일기장에 글을 쓰곤 했지만 미성년자를 지나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부터는 거의 쓰지 않았다. 그리고는 한참 뒤, 2004년 늦은 여름부터 블로그를 통해 글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일기장에 쓰인 글과 블로그에 쓰인 글에 자주 등장하는 공통 관심사는 '꿈'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사랑도 흔적이 희미한 채 온통 꿈뿐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일기장에 글을 쓸 시점에는 '꿈을 꾸고' 있었고, 블로그에 글을 쓸 시점에는 '꿈을 잃고' 있었다는 것.


  일기장에 쓰인 나의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글 속에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현실적인 한계에 여러 번 부딪히면서 '어쩌면 내가 가지는 꿈은 단지 허황된 동경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과 좌절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불안한 감정들을 추스르기 위해 가장 많이 했던 행동은 계획을 세우는 일이었다. 앞으로 해나갈 것들을 3년 단위로, 1년 단위로, 몇 개월 단위로, 한 달 단위로, 1주일 단위로, 그렇게 쪼개고 '내일부터는 이것을 할 거야'라는 다짐을 한 후에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쓰이지 않은 일기장의 글, 빈 공백에 그 어떤 끄적임의 흔적도 보이지 않게 된 이유는 그 꿈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일은 거기서 멈춰졌던 것이다.


  그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흐른 뒤, 블로그에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 시점에는 디자이너로서의 삶에 대한 회의감과 직장생활에 대한 환멸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정말 꿈꾸던 것이 이런 것이었나?'라는 배신감과 분노는 메마른 숲에 붙은 화염처럼 퍼져 갔다. 처음에는 활활 타오르다가 숲의 형체가 서서히 사라지며 재 가루로 변해가는 동안 불씨가 거의 꺼진 듯하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사그라들고 있는 것은 내가 그토록 열망했던 나의 꿈이었다.




무료하지 않았다면
알기나 했을까?

  

  오래간만에 오래된 블로그를 들춰보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몰랐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꿈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들을. 지금의 나는 꿈을 꾸지도 잃지도 않고 있다. 나는 꿈을 잊고 살고 있다. 누구에게나 꿈이라는 것은 필요하다고 여겼지만 그것이 없어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것이 슬프지는 않다. 다만 조금 무료할 뿐이다.



  한동안 '무료하다'라는 말은 삶에 있어서 '부정적 싸인'으로 해석이 되곤 했다. 무조건 앞으로 걸어가지 않으면 필히 뒤로 나가떨어지고 마는 러닝머신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 그 위에서 뭔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료하다'는 감정이 생겨난다는 것은 곧 뒤로 자빠질 일만 남은 위태로운 상태에 빠질 예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단지 잠시 쉬어가는 거야" 그렇게 되뇌었던 것도 결국, 곧 앞으로 달려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자기 위로의 방법이었다. 그나마 제대로 쉬어본 적도 거의 없었다. '쉬고 있다'는 페이크 뒤에는 어디로 뛰어야 할지, 얼마나 더 속도를 내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괜찮아?"라는 말, 듣지 않고 싶었던 것 같다. 괜찮지 않음을 갈음하는 일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간헐적 무료,
삶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다


  이제 무료함은 간헐적 단식을 생활화하고 있는 일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맛보기 전 허기를 느끼는 것과 같아졌다. 허기란 내 안이 비워져 있을 때에나 감지되는 것이고 상상하는 맛들 중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맛이 어떤 것인지를 더욱 또렷하게 떠올리게 만드는데 기여한다. 아무거나 입으로 가져가는 일을 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내 마음에 드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고 실제로 먹는 것보다 먹을 것을 고르는 시간을 더 길게 가지게 하는 것이며 먹고 있는 동안에 더 잘 느끼기 위해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처럼 무료함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고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른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 고민하고 있는 것을 관찰하는 시간들도 늘어난다. 그 관찰은 타인을 보는 것이자 곧 나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타인을 볼 시간이 없는 것은 나를 볼 시간이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내 삶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달리게 만들었던 러닝머신에서 내려와서 바라보니 기계의 작동 기저에 있었던 키가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실은 무료함 덕분이었을 것이다. 영구적으로 음식을 끊는 것이 아닌 이상 단식이 몸에 해가 되지 않듯이, 영구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에 빠지는 것이 아닌 이상 무료함이 삶에 해가 되지도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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