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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Nov 16. 2020

결핍 위의 수레바퀴

삶을 굴러가게 만드는 동력

  누구나 그러려니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 만의 삶을 각성하며 살 수 있는 것은 부족함이 없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는 있을 그 어떤 것의 결핍에서 오는 것 같다. 사람은 결핍에 대해 민감한 모양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떻게든 자신에게 있는 그 결핍을 치유하고자 한다. 결핍되어 있는 것을 채우지 못한다면 그 결핍을 상쇄시킬 또 다른 무엇을 창조해 내거나 그 결핍을 극대화시켜서 다른 이들과의 구분자로 인식될 이름표를 만들어 내는 방식에 의해서라도 말이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자신의 삶에서 특정의 결핍이 있지 않았다면 현재의 자신이 이루어놓은 것들이 어쩌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마치 한쪽이 기울어진 땅 위에 놓은 수레바퀴가 어쩔 수 없이 기운 방향으로 미끄러져 굴러가듯이, 결핍이란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끌고 가고자 하는 데 있어서 그래야만 하는 일종의 목적을 던져주는 모티브가 되는 모양이다.



  내 삶에서 결핍 위의 수레바퀴가 요동을 치며 굴러갔던 날, 그건 지독한 가난에 허덕일 때 소망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나만의 공간들을 그려내는 낙으로 버텼던 날이거나 조금의 여유를 느낄 사이도 없이 일에 치여 분주하던 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평온하게 지낼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그 시간들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쓸 것인지에 대한 상상을 끄적이는 낙으로 견뎌내던 날이었다. 수레바퀴는 현재는 내 것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내 것이 되기를 바라는 갈망의 크기에 비례하는 기울기로 인해 가속이 붙어 굴러갔다. 지독한 인력에 이끌려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그려냈던 집과 상상하는 일상은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유니크한 나의 소망의 흔적들로 남았다.


어느 날부터
수레바퀴는 움직이지 않았다.

  

    삶에서 결핍 위의 수레바퀴가 정지해 버린 날, 지난 시절 바랬던 것들 그러니까 채워지지 못한 공백들이 더 이상은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인지, 굳이 그 결핍들을 채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려는 의지를 상실한 것인지, 특별히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이 없는 일상의 한가로움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조용히 쭈그리고 앉아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어딘가 비어 있어 마음이 쓰이는 것 즉 결핍이 있는 삶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서 그렇지 않은 것을 견디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라도 베어버린 것일까. 싶을 때.


  "사는 게 왜 이리 무료하냐?" 문득 내 주변의 동년배가 숨을 토해내듯 던진 한 마디가 마음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왜 그 한 마디를 입에 올리지 못했을까. 마치 금지어로 지정해 둔 낱말인 것처럼. 나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위로와 공통적 허무에 굴복당하는 듯한 체념이 교차할 즈음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먹고 살만 하니까 잡생각이 많아지냐? 어째 감사한 줄을 몰라” 이어지는 다른 누군가의 타박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움찔한다. 이거였어. 내 입을 틀어막아 버린 내 안의 목소리가 하는 말.


평온한 이 시간도 기억에서 사라질
영원하지 않은 한 순간일 뿐이라는 걸.
매 순간 잊어버리는 매우 일상적인 결핍


순간, 수레바퀴가 삐그덕 소리를 낸다. 미세먼지만 한 티끌 같은 행복들을 풀풀 털어내어 버린 무심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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