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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Sep 17. 2021

공기같은 행복

  마음이 불편할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요. 오늘 혹은 가까운 미래에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일정이 단 한 개도 없는 상태,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 예정된 것보다 일상에서 빨리 치워 버리고 싶은 일이 남아있는 것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나와 내게 소중한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상태, 안위를 걱정해야 할 만한 일이 생기지 않고 다툼이나 오해로 인해 분노하거나 증오하거나 서운하게 생각할 만한 일이 없는 거죠. 매료될 만한 새로운 관계를 늘려가는 것보다 편안하게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를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요.  


  마음이 가는 것이 있는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요. 뭔가 깨닫기라도 한 듯 끄적이고 싶은 문장이 생각나 급하게 메모장을 찾게 되는 상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고 싶어서 화구 상자를 뒤적거리게 되는 상태, 배워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알아보고 계획을 세우게 되는 상태,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게 되는 상태, 먹고 싶은 것이 떠올라 입안에 침이 막 고이게 되는 상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 지도를 검색해 보는 상태처럼. 뭔가 심장이 간질간질 해지는 느낌이 드는 거죠. 시간이 지날수록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일상을 설레게 할 소소한 동기들을 발견하는 것에 행복의 무게를 싣게 되더라고요.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서 싱크대에 차오르기 시작한 맑은 물이 바닥을 적시고 이내 온 집안과 거리에까지 넘쳐나는 꿈을 꾸었어요. 삶의 변화가 생겨난다는 의미라고 하네요. 그 변화는 불편함이 없는 상태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끄는 것에 마음을 흘려보낼 수 있는 여유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매일의 일상에서 천천히 차올라 온 세상에 넘실대는 물처럼 내 삶에도 변화가 찾아오려나 봐요. 그 시작을 기억해야죠.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았던 사람이 나라는 것을. 내 마음이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겠죠. 아마도 행복은 내 마음이 흐르는 경로 안에 있을 거예요.



  언제부터인가 행복이라는 것이 잘게 쪼개진 입자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작아서 공기 중에 섞여 있다고 해도 찾을 수 없지만, 매 순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내 안으로 들어왔다가 토해지기를 반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느 날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가 또 어느 날은 내게 남겨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불행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입자를 머금은 공기는 굳이 움켜쥐고 있어야 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살아있는 한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쉬기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도 때때로 진공상태인 양 착각하고는 과호흡증후군처럼 들이마시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기도 한다. 마음속의 불편한 감정을 내려놓고 늘 해오던 대로 의식하지 않은 호흡을 하는 것처럼 늘 행복을 곁에 두고 있다고 편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것이 행복인가? 저것은 불행인가? 의식을 하는 순간 삶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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