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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Oct 06. 2021

나는 잘 지냅니다.

부모님 전상서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라 환갑의 의미조차 사라져 가지만, 두 분은 그 시점도 넘기지 못하셨죠. 가난과 병마, 그 지독한 좌절과 외로움 속에 허망하게, 딸의 결혼식에 손을 잡고 들어가거나 갓 태어난 손자를 품에 한 번 안아 보지도 못하고 가셨어요. 한동안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상실감과 사는 것에 바빠 신경 쓰지 못한 죄책감이 컸던 것 같아요. 자식의 입장에서만 바라봤으니까요. 지금은 일상 속 평범한 순간에 불쑥 떠올리곤 해요. 직장에서 이리저리 치여 보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투덕거려 보고, 아장아장 걷던 아이를 이젠 올려다보며 '곧 품에서 벗어나겠구나'하는 생각에 울컥하다 생각하죠. 두 분도 부모이기 전에 각자의 삶을 살아간 한 사람이었을 텐데, 젊음이 지나고 노년의 코앞에서 걸어온 시간을 반추하며 동반자와 소소한 행복들을 누릴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걸 알았을 때 어땠을까요? 먹먹해서 눈물이 나요. '켜켜이 행복을 쌓아도 부족할 때 너무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냈겠구나'하는 마음에.


  나는 대체로 평온하게 보내요. 어린 시절의 상처와 청춘의 치열함 그리고 부부와 부모가 되기 위한 갈등을 뒤로하고, 지나온 시간의 의미와 지금의 삶에서 느끼는 평범한 행복들을 주워 모으며 살죠. 그리고 이제야 두 분의 뒷모습을 봅니다. 철없던 딸로서 바라본 두 분의 삶이 어떠했든 상관없이 그때의 아빠와 엄마에게는 최선을 다하며 버텨주었던 시간이었다는 걸 알아요. 또 내가 삶에서 크게 넘어지거나 무너져 내릴 때도 다시 털고 일어나 걸을 수 있었던 긍정적인 에너지를 두 분으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것도 알죠. 철이 없어서 함께 했을 때 따뜻한 위로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사는 게 힘들 때도 포기하지 않고 내 곁에 있어 준 것에 고맙고, 지난 시간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있었든 간에 그 모든 모습을 사랑합니다. 세 식구가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하던 한때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어요. 두 분의 딸이라서 참 행복했어요.



  '부모의 나이가 되어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말, 그것을 내 경험을 빌어 고쳐 쓰자면 '부모의 나이가 되면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였을 부모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라고 할 것이다. 자식의 시점에서가 아니라 부모 역시도 한 사람의 삶을 사는 존재로서의 시점으로 말이다. '왜 내게 그렇게 했을까?' 혹은 '그렇게 말고 다르게 살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삶 속에서 했던 무수한 선택들이 늘 옳거나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던 것처럼, 여전히 풀지 못하는 문제들을 안고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처럼 과거의 부모 역시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여 한참을 울곤 했다. 지난 시절 내게 그 이유를 말해준다고 한들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당시의 부모와 같은 나이에 이르지 못한 내가 가지고 있던 답안지에는 해석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해석은 늘 내가 걸어가는 현재라는 길에서 방금 밟은 발 밑에 하나씩 깔려 있었으니까.


  지금의 나 역시도 나의 아들에게는 훗날 이해될 어느 한순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해는 부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내가 부모를 이해하는 것이 결국 내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처럼. 다만 미래의 그날 아들이 떠올릴 부모로서의 내 모습이 외롭고 힘들게 보여 가슴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대체로 희극이기를.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 앞에서, 가급적 순간적인 유혹에 덥석 빠져 삶의 평온을 깨지 않고 소소하고 평범한 것을 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고 나 자신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쌓아 자식의 든든한 디딤돌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일상 속에 늘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부부 혹은 부모이자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자식의 기억 속에 남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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