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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lla Sep 01. 2020

어서 와, 이런 사기는 처음이지?


강렬했던 이집트 여행 신고식

현지시간 오후 세시, 꿈에 그리던 이집트에 도착한 P와 나는 가이드북에서 누누이 경고했던 호객 택시를 가뿐히 물리쳤다고 생각했으나 오만이었다.


수도인 카이로 시내에 한인민박을 예약했던 우리는 (우리나라의 서울 명동 같은 곳에 숙소를 예약했다.)

카이로로 가는 버스를 찾다가 이내 포기하고 택시에 올라탔는데 이때부터 내 눈물을 쏙 뺀 이집트 신고식이 시작됐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택시가 계속 외곽으로 외곽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부터였다.

'어? 이상하다? 우리 숙소는 도심 한복판 이랬는데 왜 자꾸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는 거지?'

그리고 택시기사가 연신 차를 세워 길을 묻는 것 같았다. 아랍어를 몰라도 느낌이 그랬다.


이상함을 감지한 우리는 유일하게 믿을 곳이었던 한인민박집주인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랍어로 통화하던 아줌마가 우리 보고 당장 택시에서 내리라고, 이 기사는 길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을 땐, 정말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아, 엄마가  큰 맘먹고 허락해주신 이집트 여행인데. 불효한 벌을 여기서 받나. 나 이제 집에 못 돌아가고 이집트에서 국제미아 되는 거야?'

머릿속으로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급하게 택시를 세웠는데, 택시기사는 아주 뻔뻔하게도 우리에게 택시비까지 바가지 씌웠다.

(내가 여행할 때에만 해도, 이집트 택시는 택시비를 흥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지 물가도 모르고,  택시를 타고 길을 잃은 이 상황이 무섭기도 하고, 머릿속이 하얘진 우리는 택시기사가 달라는 대로 택시비를 주고 나서 이게 우리가 이집트에서 당한 첫 사기인 것을 깨달았다. 

가이드북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혹독했다.


 아니, 택시기사가 길을 잃을 수가 있나. 그럼 우리를 태우지 말았어야지. 

아랍어로 쓰인 한인민박집 주소를 프린트해가서 보여줬었는데, 택시기사가 아마 문맹이었던 것 같다.

아랍어를 구사할 줄 모르는 우리와 아랍어를 읽을 줄 모르는 택시기사의 소통 부재가 불러온 참극... 


(이집트 택시와 관련된 황당 일화는 정말 한 트럭이 나올 정도로 많은데, 앞으로 다루기로 하고 일단 차치하겠다.)


또 국제미아가 되는 건 아니겠지?

문제는 택시를 내리고 나서부터였다. 우리의 유일한 믿는 구석이었던 한인민박 주인아줌마는 알아서 찾아오라고 하며 전화를 무책임하게 끊어버렸고, 우리는 공항에서도 한참을 벗어난 외곽의 어느 동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랍어도 못하는데 해는 지고 있었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다행히 기지를 발휘해서 하교하고 있는 이집트 여학생들에게 짧은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택시를 잡아줄 것을 부탁했고 이집트 여학생과 어느 친절한 아주머니 덕분에 택시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택시기사도 믿을 순 없었다. 똑같은 상황이 또 발생하지 않을 거란 법이 없으니까.

여긴 이집트니까. 

또 국제미아가 되는 건 아닌지 겁이 나기 시작한 나는 택시 안에서 몰래 울음을 삼켰다.


이 택시, 믿어도 되는 걸까?


[앞으로 이어질 이집트 여행기는  2011년 1월 이집트 여행 중 작성했던 여행일기를 기반으로 각색한 에세이입니다. 참고해서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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