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간 내 둘레에서 나를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쟤가 왜 저렇게 손톱에 둔갑질을 부리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거의 1주일에 한 번씩 네일에 변덕질을 했다. 평생 하지도 않던 짓을 왜 그렇게 했을까.
나는 원래 네일아트를 하지 않았다. 손도 오뎅손으로 통통하고, 손가락도 짧고, 피부도 어설프게 까무잡잡한 편이라 (뭐 그렇다고 태닝한 것 같은 구릿빛도 아니고) 무슨 색을 해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20대 때 두 번 정도 네일을 받아봤지만 영 색도 어울리는 걸 못 찾겠고, 불편하기도 해서 가끔 여름에 외국으로 여행 갈 때 페디큐어만 받고 갔었다. 여름에 맨발에 맨 손톱이면 벗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 그런 걸까? 나만 그런가?
쿠바에 갔을 때, 버스 예약을 하러 갔는데 버스표를 끊어주는 언니의 손톱이 (요즘의 화사 손톱만큼) 긴 걸 보고 '우와 저 손톱으로 어떻게 글씨를 쓰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모든 장소에서 만난 쿠바 언니들은 다 손톱이 길고 화려했다. 그 언니들은 우리가 한 페디큐어에 관심을 보였는데 어디서 했느냐 (한국에서 했냐, 쿠바에서 했냐), 혹은 얼마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들이 그녀의 나라에서 네일을 받는 가격은 만원 언저리였던 것 같다. 우리는 거의 4-5만 원의 페디를 받고 갔던 터라, (두 나라이 물가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여튼) 그 가격을 부러워했었다.
갑자기 네일을 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인스타 광고...? 요즘에는 집에서 혼자 할 수 있게 네일팁을 붙이거나 스티커 같은 젤을 붙인 다음에 경화시키는 셀프 네일이 유행이다. 그런 종류의 광고였는데, 요즘 디자인은 모두 같은 색을 칠하는 게 아니라 손톱마다 전부 다르게 하는 게 많다. 어떤 디자인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저 색과 저 디자인이면 시커먼 내 손 하고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네일에 돈 쓰기 시작한 게.
처음에 시도한 디자인은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내 마음에는 쏙 들었고, 비슷한 부류의 색, 다양한 종류의 디자인을 사기 시작했다. 손톱이 약해서 조금만 자라면 다 부러져버리는데 오히려 젤네일 스티커를 붙이니까 부러지지 않고 길게 기를 수 있었다. 스티커 종류 말고도 그냥 위에 팁을 붙이는 종류도 있는데 이쪽도 예쁜 디자인이 많았다. 그리고 붙이기만 하면 되니까 훨씬 빠르고 쉽게 할 수 있었다. 젤네일 스티커보다는 빨리 떨어지는 거 같지만 손톱이 짧거나 부러졌을 때는 네일팁이 훨씬 유용했다. 그러면서 점점 이 디자인, 저 색깔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1주에 한 번씩 디자인을 바꾸게 되었다. (네일숍에서 한 번 받으면 가격은 비싸지만 그래도 오래가는데 이렇게 자주 바꿀 거면 네일숍 가는 거랑 금액면에서 큰 차이는 없을 거 같긴 하다만...)
사실 내 손톱에 관심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딱히 누군가를 보여줄 사람도 없었다. 그냥 매우 기분이 피곤하거나 할 일이 많을 때마다 앉아서 손톱을 못 살게 굴었다.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을 떼어내고 손톱을 정리하고 무언가를 붙이고 끝에는 자르고 경화시키고 다듬고 하는 시간은 30-40분 정도 걸렸는데 그 시간 동안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사실 멍 때리는 일은 멍 때리기 대회가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몇 년 전에 6개월 간 집에 오자마자 30분씩 캘리그래피를 한 적이 있다. 그때도 피곤함을 무릅쓰고 글씨를 썼던 건 그 시간 동안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돼서'가 그 이유였던 것 같다. 손은 열심히 움직이지만 머리와 마음은 쉬는 시간, 손톱을 갖고 둔갑질을 하는 시간은 나에게는 온전한 휴식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바빴던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그 잠도 부족한 와중에, 밤 12시가 넘어도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손톱을 매만지고 있던 것 같다.
이젠 기술도 좀 생겼고, 나한테 어울리는 디자인과 색을 찾는 안목(?)도 생긴 것 같다. 다만 자꾸 돈을 써대서 (생각보다 비싸다) 이제 그만 멍 때리기 수단을 바꿔야 하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셀프 네일을 종종 할 것 같다.
그냥 내 눈에 이쁘니까,
이래 보여도 이쁜 거 좋아한다고.
혹시 우리 집 놀러 오시면 한 번 해드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