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건대 나는 요가원에 다녀 본 적이 없다. 요가원에 발을 들여놓은 적도 없으면서 인터넷 광고글 하나만 보고 거금 400만원을 내 요가 지도자 자격증 과정을 등록했다.
요가 강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내가 요가를 배웠던 건 무려 12년을 거슬러 대과거로 올라가야 한다. 대학교에서 교양으로 요가 수업을 들었다. 운 좋게 학생들을 좋아하고 요가 수업에 사명감이 넘치는 교수님을 만나서 수업이 재밌고 좋아 학점과 관계없이 세 학기를 연달아 수강했다.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 있었고 요가를 직접 하기 전 맛보기식이라 지속적으로 수련해야 한다는 요가의 본질에서는 조금 벗어나있었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요가의 유래에 대한 이론 설명도 들었고 여러 갈래에 대해서도 잠깐 발을 들였던 것 같다. 교수님 덕분에 혁신적인 임산부 요가, 키즈 요가도 그 당시에 맛봤다.(물론 10년이 더 된 일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잘 생각이 안 난다.) 유난스럽게 요가를 수강하는 상경대 학생에게 교수님은 지나가는 말로 “나중에 기회 되면 지도자 과정을 해 보라”고 하셨다.
방학이면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내려가서 엄마 따라 주민센터 요가 수업을 들었다. 엄마는 20년 가까이 주민센터 지박령으로 요가를 배우고 있다. 주민센터는 6개월간 매일 1시간 30분씩 3만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요가 수업을 여는데 엄마는 이 수업에 출석률이 100%에 수렴하는 모범 수강생이다. 한 학기 동안 서울에서 몸을 잘 불려온 딸을 주민센터 요가 수업에 데려가 가둬놓고 열심히 수업을 듣게 하는 게 부모로서 본인의 소명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이 센터는 아줌마들이 주 수강생이라 대학생이었던 나는 센터에 갈 때마다 모두의 관심 대상이었다. 이곳의 프로그램은 빈야사나 하타, 아쉬탕가 같은 본격적인 수련은 아니었고 몸을 많이 늘리고 찢어주고 시원하게 하는 스트레칭 위주의 힐링요가 수업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젊어서 그런지 유연하다”, “잘한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내심 우쭐했다.
이후에는 체력을 키우겠다고 뜸하게 헬스장을 찾았을 때 제대로 운동하는 법을 몰라 GX(그룹운동) 프로그램을 기웃거렸고 한 번 맛을 들인 후 매번 GX만 했다. 줌바, 스피닝과 요가 수업을 몇 번 들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헬스장 이용권이 만료됐다. 운동화를 찾아오지 못한 채로...
한참 뜸하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 유튜브로 요가를 시작했다. 알고리즘 덕분이었다. 몇 년 째 하루 8시간 이상을 안 좋은 자세로 컴퓨터만 쳐다 보니 거북 목이 심하고 어깨도 굽었다. 허리 측만증과 비틀어진 골반은 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디폴트가 되면서 이동량이 줄었고 뼈와 근육 관절들이 곳곳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급격히 통증이 생겼고 생각보다 심했다. 심한 날은 잠도 못 자겠다 싶었다.(가 조금 지나면 잘 자긴 했다.) 반년 정도 아침 저녁으로 유튜브 요가 동영상을 보면서 따라 했다.
쥐어 짜낸 요가와의 연은 이게 전부다. 이토록 요가 무지랭이인 내가 올해 1월,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1시간 안팎의 거리는 사부작사부작 잘 걸어 다닌다.) 요가원에서 낸 지도자 과정 공고를 보고 고민 없이 덜컥 등록했다. 이유는 딱 두 개. 인생에 한 번 정도는 요가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그리고 집에서 가까워서다.
내가 등록할 당시에는 오미크론 변이 유행이 막 시작된 단계라 확진자가 하루 5천명 안팎이었다. 점심, 저녁 회식이 줄줄이 취소됐고 당직근무는 재택으로 서니까 부서나 회사에 지장을 주진 않겠다 싶었다. 사실 기간이나 수업 시간도 제대로 확인을 안 했다. 가격이나 프로그램 내용을 다른 곳과 비교하지도 않았다. 요가 가르치는 거 다들 비슷하겠지, 가격도 엇비슷하겠지라 생각해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내가 요가뿐 아니라 대부분의 결정을 할 때도 이렇게 건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식해서 본인이 용감한지도 모르고 내지르는 스타일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걸 그렇게 결정했다고?’라며 놀라지만 정작 나는 태연하다. 자신감 있거나 당차기 때문은 아니다. 대학, 취직, 이직을 거쳐 일생일대 모든 결정을 이런 식으로 무던하게(생각 없이) 했고 그런 것 치고는 운이 좋아 탈 없이 인생을 굴리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3 수능이 끝나고서는 유료 서비스도 안 쓰고 그냥 가보고 싶은 대학교를 지원했다가 아깝게 떨어졌고 재수했던 해 수능을 마치고는 이름이 멋진 전공을 골랐다. 취직할 때는 그냥 제일 빠르게 부르는 곳을 갔다. 이직할 때는 갈 회사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게 될지도 묻지 않고 덥석 “일단 가겠다”고 했었다. 친구들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매번 나와 같은 관문 앞에서 한참 고민하고 검색하고 조언을 구하고, 관문을 지난 후에는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이렇게 큰 일이었구나, 남들은 저렇구나, 다음번엔 나도 좀 침착하게 생각해봐야지’라고 다짐하지만 그 순간뿐이다. 이젠 나 스스로를 잘 아는데도 여전히 모든 결정을 일단 무식하게 한다. 그래놓고는 또 덤덤하게 해내는 멋진 사람이고 싶어 부서져라 발버둥 친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뒷생각 없이 일단 결정한 다음에 어떻게든 되게만 만드는 굴레를 평생 반복해온 셈이다.
요가도 그 무식한 결정 중 하나일 뿐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현생에 치여 등록했다는 사실도 깜박하고 있었다. 그때쯤 과정이 시작됐고 첫날인 2월 어느 토요일 아침 지도 앱을 보고 더듬더듬 요가원을 찾아갔다.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근처에서 헤매다가 같은 기수 30명 중 꼴찌로 도착했다.
첫 수업에서 동기(꼰대 양산의 지름길인 K-기수문화는 인도에서 들어온 요가에도 있다) 30명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요가원에 앉아있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고 느꼈다. 다들 최소 1년 정도 요가원에 다니면서 수련을 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세 명은 현직 강사였는데 본인의 부족함을 느껴 추가 자격증 취득을 위해 이 과정을 등록했다고 말했다. 한 명 한 명 본인을 소개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놓였는지 깨달았다. 자유시간이 되자 내 주변에 앉은 동기 선생님들은 어색한 공기를 풀려고 ‘업계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강사 과정 등록을 고민했던 다른 요가원 후보들이 어디였는지, 어디에 어떤 원장님이 유명한지, 수업을 들어본 요가원은 몇 곳인지, 인플루언서 요가 강사 누구는 자격증 몇 개를 갖고 있는지와 같은 얘기가 오가면서 데면데면했던 사람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겼다. 물론 나를 빼놓고다. 10초 컷으로 등록 결정을 마치고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내가 알 리 만무한 얘기였고 한 마디도 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4차 산업혁명, 사물인터넷 시대인데...에 기대를 걸어 보았으나 유투브로 요가를 시작한 야매는 아무도 없었다. 제대로 배워본 적 없어 이번에 요가를 시작한다는 사람도 나 하나뿐이었다. 나중에 원장님은 “이런 애 처음 본다”고 했다. 그렇게 비싼 돈을 내면서 문의도 안 하고 사전답사도 안 할 수가 있냐, 지도자가 되는 수업을 거리로만 결정할 수 있는거냐고 물었다. '요가원에는 무식한 결정자가 흔치 않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강사 과정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나랑 이렇게까지 접점이 없는 걸 어떻게 이렇게 겁 없이 시작했나’를 계속 생각해봤다. 곰곰이 되짚어본 끝에 착각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
중요한 건 이 착각은 나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내 인생의 엑스트라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게끔 도와줬다. 무려 25년 전 알파벳도 몰랐던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특기 적성 교실로 골랐던 수업이 발레다. 유연한 몸을 가졌던 덕에 난 다리찢기를 잘했다. 쭉쭉 찢어졌다. 선생님은 새로운 친구가 발레 교실에 올 때마다 조금 겁을 주려는 목적으로 “교실 뒤쪽 가서 다리 좀 찢고 있어”라며 칭찬했다. 친구들 몇몇은 부러워했던 것 같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내 귀가 칭찬을 기억하고 있었고 내 몸은 요가원 광고를 보며 요가 강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착각에 빠졌다. 귀는 대학교 교수님이 흘려보낸 말을 귀신 같이 담아뒀다. 시골 주민센터 아줌마들의 혼잣말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직장인으로 요가 지도자 과정을 듣는 것은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 열 배는 더 정신없고 바쁘고 힘이 든다. 이상한 점은 이런 하루가 꽤 만족스럽고 풍요롭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착각할 수 있도록 사소한 칭찬을 남겨준 엑스트라 여러분들께 참 감사하다. 이런 결론에 다다른 후부터 사람을 만나면 본인도 발견하지 못했을 작은 장점을 찾으려고 상대방을 들여다본다. 글씨가 예쁘다, 발음이 좋다, 계획을 구체적으로 잘 짠다, 근거가 확실한 말을 한다, 등등. 언젠가 이 사람의 인생에 착각할 용기를 주는 엑스트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당장은 흘려넘길 칭찬을 한다. 그리고 살아보니 칭찬은 정말로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 받은 고래는 심지어 25년이 지나서라도 인생에 한 번 쯤 춤을 춘다. 오늘 나와 만난 당신도 작은 착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부끄러워 말고 춤출 준비나 잘 해 두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