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사요. ‘만병통치요가’는 못 믿어요

by 올챙

우여곡절 끝에 지도자 과정이 시작됐는데 나는 첫 이론 수업부터 요가화에 실패했다. 요가의 뿌리가 철학이라 내용이 현학적이고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더 큰 난관은 ‘만병통치요가’ 이론이었다.


요가원마다 지도자 과정 프로그램에 차이가 있을 텐데 내가 등록한 곳은 요가와 명상에 대한 이론 수업이 프로그램 주요 내용 중 하나였다. 이외에는 조별로 티칭(가르치는 행위) 연습을 했고 인체 구조를 알기 위해 기초 해부학을 배웠고 별도로 개인 수련 시간을 채워야 했다.


나는 첫 이론 수업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이론은 결국 ‘요가를 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다고? 요가를 하면 된다. 우울증이라고? 요가를 하면 된다. 요즘 바빠서 힘들다고? 요가를 하면 된다. 지금 당신의 인생에 한 가지 이상 문제가 있다면 그건 요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가를 하면 전부 해결된다.


위 문장에 요가 대신 ‘약’을 넣어보시라. 아마 첫 수업을 듣고 영혼이 사라져버린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니 내가 종교시설에 온 거냐구. 이런 말 할 거면서 수업이란 단어를 붙였나? 어디서 약을 파는거야. 서른 넘은 성인인데 이런 말을 듣고 홀라당 넘어가 요가 신봉자가 될 거라고 생각한건가. 정말 너무하잖아.


이런 생각을 하고 주위를 돌아봤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죠? 선생님도 나랑 같은 마음이죠?’라고 텔레파시를 보내려다 깜짝 놀랐다. 앞, 뒤, 좌우를 돌아봐도 나같이 주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수강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필기를 하고 있었다.


논리는 이렇다. 몸과 마음이 이어져 있는데 어느 쪽이든 고장이 난 것은 에너지의 흐름이 막혔기 때문이다. 요가의 근본은 인간의 몸과 마음에 흐르는 에너지와 기(氣)의 흐름을 뚫어주는 것이다. 정신적인 문제는 명상으로 마음의 에너지를 뚫으면 해결된다. 수련(흔히 스트레칭으로 여기는 신체 운동)을 하면 몸에 흐름을 뚫어 불균형을 조금씩 고칠 수 있게 된다. 근본적으로 요가는 둘 다 고장나지 않게 한다. 정신은 안정시키고 몸은 탄탄하게 만든다. 심지어 오랜 시간 요가를 계속하면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뤄 고장날 일도 잘 없다.


별세계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트루먼이 된 것 같았다. 나를 뺀 모든 사람이 대단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문제는 그 비밀이 나한테는 허무맹랑한 영업사원의 홍보 멘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내가 이상한 건가 싶어 되짚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었다. 강사가 아니라 종교인을 모집하는 과정인가? 요가를 종교로 여겨야만 이 과정을 들을 수 있는 거였나? 맹목적으로 이런 말을 믿으면서 운동을 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야말로 궁극적으로 시원하게 몸 풀려고 하는 운동이고 늘씬하고 건강해지려는 웰빙 취미지, 나와 관련된 모든 걸 잘 풀어가기 위한 활동이라고 하는 건 요즘엔 보기 힘든 허위·과장 광고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나의 의심은 바디스캔이라는 명상을 할 때 정점을 찍었다. 바디스캔은 주의를 몸의 각 부위로 옮겨가는 명상법이다. “오른쪽 종아리를 느껴봅니다”, “정수리에 마음을 집중해서 있는 그대로 감각을 느낍니다.”와 같은 설명을 따라 온몸의 감각을 깨워주는 과정이다.


요가원에서는 수업 중 20분 가량 바디스캔을 하고 끝난 후 어땠는지 감상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주의를 옮겨간다고? 감각을 깨운다고? 나는 이 설명도 이해가 안 됐고 바디스캔을 시작한 후 몇 분을 넘기지 못하고 잠에 빠졌다. 당연히 나눌 감상도 없었다. 일부 선생님들은 ‘온 몸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세포 하나 하나 다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새로 태어난 것 같다’ 등등 느낀점을 얘기했는데 나는 ‘뭘 느껴야 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질문했다. 선생님은 “너무나 이성적인 일을 하고 있어서 느낌이 거의 없고 생각에만 치우쳐 있다. 감각을 키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답했다.


흠. 직업 예술인을 빼놓고 바쁘다바빠 현대사회에 감성적인 일이 있나. 조직 안에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이성적인 일이 아닐 수 있나. 감각도 결국 생각의 한 종류 아닌가. 선생님의 답변은 이성적이고 논리로 점철된 날 설득시키진 못했다.


이론 수업은 흘리기로 했다. 요가 강사라고 해도 다 같은 마음으로 요가를 대하진 않지. 나는 ‘운동’으로 요가를 대하는 강사가 돼야지.


맞다. 요가를 체조로 분류한 것이다. 요가는 몸을 쓰는 운동이라는 내 철학을 펼치기 위해 나름 노력을 했다. 거의 매일 저녁 퇴근만 하면 요가원으로 가서 수업을 2개씩 들었다. 달밤에 온몸을 쭉쭉 늘리고 당기고 찢어주는 체조를 성심성의껏 했다.


이 요가원의 지도자 프로그램은 주말에 명상 수업과 실습을 하고 평일에는 매일 스스로 명상을 연습하도록 구성됐다. 평일 밤마다 침대에 누워 바디스캔 음성 파일을 틀었지만, 5일 내내 중간에 잠이 들었다. '오늘은 다를까' 하는 생각으로 누웠다가 '오늘도 역시나' 느낌을 못 받으면서 한 주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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