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엄마의 시선, 내가 명절에 여행을 간다니!

29년만에 추석 명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선택의 기회!

by 보라진




엄마, 추석 연휴에 여행 갈 수 있어?



2월의 어느 날, 결혼한 딸이 물어온 말이다. 순간, '추석에 여행을 가자고?' 솔깃함과 동시에 '너는 가능하나 나는 가능하지 못하지'라는 다소 실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에 여행 한 번 못 갈 이유가 어디 있겠어?' 라는 대뜸 용기가 생겼다.



참고로 딸은 결혼한 지 일 년 차 신혼이고 시댁은 미국에 있기에 명절을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상황이다. 나는 결혼 29년 차로, 한 번도 추석 명절에 한국을 떠난 적이 없었고 보편적인 명절 코스(시댁과 친정을 오고 가는 일)를 밟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순간의 선택이 한국에서 또 같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우울하게 있을 것이냐, 아니면 훌훌 털어버리고 이탈리아에 있을 것이냐를 결정할 기회인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대뜸 “여행 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딸에게 대답했다. “정말 갈 수 있는 거지?”라고 재차 딸은 물었고 “갈 수 있어!”라고 확인 도장을 찍듯 대답을 해줬다. 딸의 물음과 나의 대답으로 이탈리아 여행계획은 시작되었다.




물론 남편과 남은 두 딸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흔쾌히 다녀오라고 수락을 해 주었다. 아직 추석은 9월이기에 6개월 이상 시간은 남아있었다. 그 기간에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해야 했고, 추석이 가까워졌을 때는 시댁과 친정에 서운하지 않도록 충분한 설명과 더불어 미리 찾아뵙는 일을 해야 했다. 기다림의 끝은 성큼 다가왔고, 드디어 10박 11일 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딸과는 가까이 살고 있어 충분히 공항을 함께 출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인천공항을 가는 대중교통을 어느 걸로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었는데, 딸은 버스를 타면 멀미가 있으니 지하철을 원했고, 나는 짐도 있으니 편하게 한 번에 갈 수 있는 공항버스를 타고 가자는 의견이었다.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딸은 지하철로 나는 공항버스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인천공항에서 만나는 거로 의견을 마무리 지었다. 아무리 서로가 편하다 해도, 함께 떠나기로 한 여행인데…. 사실 의견을 좁히고 좁혀 같이 가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양육할 때, 어릴 적 부터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짓도록 했다. 자녀들을 존중하는 차원도 있었고, 자신의 선택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가르쳤었다. 이러한 나의 양육법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큰딸을 보며 새삼 느꼈다. 언제 이렇게 강하게 컸나, 이것이 내가 아이가 컸을 때 원하던 모습이었나 하며 아이의 어릴 적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Screen Shot 2019-01-08 at 6.24.10 PM.png 공항에서 만난 나와 딸.




결국, 우리 모녀는 각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공항에서 모든 절차를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긴 비행 끝에 로마 국제공항인 레오나드로 다빈치 공항에 밤 9시쯤 도착했다. 딸이 픽업 기사님을 예약해놓았다고 했고, 양복을 입은 멋진 기사님을 만나 안사돈이 먼저 도착해 계시는 있는 숙소로 향했다.



안사돈과 늦은 밤에 반가움과 신기함을 함께 나눴다. 결혼식 후 처음 만나는지라 궁금한 것도 많고, 그동안 묻어둔 할 말도 많았다. 어떻게 지내셨는지 가족의 안부를 물었고, 바깥사돈들이 안 오니 좀 서운하지만 편하기도 하다며 서로 공감하고, 로마에서 만날 줄 꿈에도 생각도 못 했다고 하면서 담에는 어디서 만날지 농담을 던지기도 하며 수다는 한없이 이어졌다. 특히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일은 명절에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매번 다가오는 명절마다 미리 시댁에 가서 음식을 해야 하는 일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무가 되어버렸다. 29년의 세월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당연하게 지나갔던 명절에 내가 이탈리아에 있다니. 나로서는 너무나도 획기적인 일이라고, 이 모든 게 딸과 사위 덕분이라고 안사돈에게 말하고 또 말했다.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않아도 결혼 30년쯤 되고 그 이상이 넘으면 결혼의 테두리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다 안다. 나보다 5살이 많아 언니 같기도 한 안사돈과 딸 그리고 사위와 앞으로 펼쳐질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품고 로마에서 첫날 밤을 지냈다.





Screen Shot 2019-01-08 at 6.24.29 PM.png 밤새 이어지는 수다. 믿기지 않는 꿈같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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