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여행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때쯤이었을까 그 전이었을까 무튼 여행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김동영. 생선작가.
그의 신간이 나왔다고 해서 냉큼 사서 읽어봤다.
아마도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가 그의 첫 책이자 가장 유명한 책이었을 것이다. 찾아보니 2007년에 출간됐다고 하니 무려 10년 전이다. 그 책으로 유명해진 그는 3년 뒤쯤 '나만 위로할 것'이란 책을 냈고 그 후에도 두세권 정도 더 책을 냈다고 한다. 내가 읽어본 건 앞의 두 권뿐.
그때 나는 이십 대 초반이었고 작가는 삼십 대 초반이었다. 어린 내게 감성감성한 그의 글들은 너무나도 좋았고 소중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내용은 사실 잘 기억이 안 나지만 ㅎㅎ
그랬던 그의 이번 책은 굉장히 뭐랄까. 아 이 작가도 나랑 똑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이구나. 싶었달까. 나이가 들고 일상을 살아가는 작가는 어리고 여행하던 그때완 조금 다르게 가볍고 싱거워져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근데 그게 실망스러운 게 아니라 친근하고 웃음이 나고 재미있었다.
여행이 시큰둥해진 여행작가라니! ㅋㅋ 괜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처럼 길게 여행을 한건 아니지만 좋아하고 꽤 열심히 다녔던 내가 작년 남미 여행을 갔을 때, 혼자의 방랑욕이 조금 시들해졌던 그때가 생각났다.
우린 모두 현실을 잊기 위해 여행을 한다. 여행이 현실 같다면 가고 싶지 않을 테지. 작가도 현실 도피성 여행을 다녔다. 도피 여행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좀 더 넓고 잔잔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떠나고 남겨진 사람에게도 그런 시간이었을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왤까.
어린 시절엔 아니 불과 몇 년 전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이 든다. 떠날 용기가 있었던 게 아니라 버텨낼 용기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 (혹시 나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예전엔 장기 배낭여행자들이 부럽기만 했다. 짧게 여행을 온 내가 만난 그 여행자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고 자유롭고 멋있어 보였었다.
헌데 나이가 들어 여행자들을 만났을 땐 자유롭고 멋있는 그 모습 뒤에 다른 것들이 보였다. 좋은 것만 보여줄 수 있는 짧은 만남들 속에서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는 모습, 여행을 다니며 경험한 것들에 대해 내세우고 싶어 하는 마음, 다른 도시로 떠나 관계를 마무리함으로써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
그것이 좋다 나쁘다 판단하고 싶지도 않고 내겐 그럴 자격도 없지만 그저 어린 시절 내가 생각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는 이제 꿈꾸는 것들을 멀리서 찾지 않고 내 안에서 찾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여행을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혼자, 멀리, 오래 하는 여행에 대한 로망이 시들해진 나는, 뭔가 내가 너무 나이가 들고 열정이 사라진 것 같아 조금은 속상하기도 했었다. 억지로 난 아직 여행에 대한 열정이 있다고 생각해보기도 했었다. 인정해버리면 정말 내가 빛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까 봐서, 그랬던 것 같다.
헌데 나보다 백만 배는 집시 같은 이 작가가 저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왠지 위로가 된다고 해야 하나.
그래 모두 가치관은 변하기 마련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변하기 마련이며 그건 나쁜 것도 지루해진 것도 아니고 그저 달라진 것뿐이라고.
그렇게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작가는 이 책에서 혼자만의 장기 여행을 예찬하기도 하고 의미 없다고 후회하기도 하고 이랬다 저랬다 한다. 40대가 된 작가의 정체성의 혼란인 걸까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읽기에 참 좋았다. 하하
+ 이 책의 제목은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이다.
그 표지를 살짝 들춰보면 세 글자가 나온다.
괜찮아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