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나를 슬프고 미안하고 씁쓸하게 만든 책.
지난번 펀딩에 참여해 리워드로 받은 책이었다.
몇 년 전 매우 잔인하게 앙고라의 털을 뽑는 영상을 본 후 최소한 내 욕심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소비를 하지 말자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워낙 비싼 옷 비싼 가방은 잘 안 사는 편이라 어느 정도 잘 지켜졌었으나 그 결심은 지난겨울 롱패딩을 고르다가 무너져버렸다.
털 없는 패딩을 살 거야 오리털 말고 다른 건 없나.. 하던 나는 '오리털이 그래도 젤 따뜻하지, 이번 겨울 엄청 춥데, 캐쥬얼한 것보다 모자에 털 달린 여성스러운 게 이뻐!' 등등 주변의 이야기에 혹해 결국 라쿤털이 달린 오리털 패딩을 사버린 것이다..
그러고 나서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 서문엔 이런 글이 있었다.
좌절할 필요는 없다. 열 번의 선택 중 단 한 번이라도 유혹을 누르고 동물과 환경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죄책감을 안고 책을 펼친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이건 마치 오늘 폭식했다고 좌절하지마 내일 샐러드 먹으면 되지! 하는 것 같았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시도하는 삶을 사는 여러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위로가 되는 서문을 읽고 용기를 내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속엔 슬프고 잔혹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잔인하게 희생되는 돌고래, 소, 코끼리부터 패션으로 소비되는 라쿤, 악어, 뱀 그리고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인해 약재로 소비되는 곰, 코뿔소, 하프물범까지..
읽는 내내 얼굴이 찌푸려지고 슬프고 마음이 불편했다. 알고 있었던 것들도 있었지만 미처 몰랐던 사실들이 더 많았다.
동물들의 현실이 굉장히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참고 읽은 후 곱씹으며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라쿤이나 앙고라, 밍크 등의 동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모른다. 심지어 어린 시절엔 동물의 이름인지도 몰랐던 것 같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도 더 별생각 없이, 죄책감없이 소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귀여운 동물에 비해 악어나 뱀 같은 동물의 복지엔 관심이 적다고..)
책의 마지막 부분 즈음, 서문과 유사한 맥락의 이야기가 한번 더 나온다.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고 내 선택이 지구 저편의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산업을 유지시킬지도 모른다는 것, 열 번에 한 번이라도 잠시 시간을 들여, 잠시 불편을 감수해 선택하면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물론 난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삼겹살을 먹고 치킨을 먹고 오리털 패딩을 입고 집을 나설 것이다.
허나 최소한 다음번에는 비건 패딩을 구매하거나 돌고래쇼를 보지 않고 루왁커피나 오메가3 를 구매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하나 안 입고 안 먹는다고 세상이 바뀌나, 나 하나 달라진다고 뭐가 변하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눈을 반짝이며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나는 속으로 흥칫뿡 너 하나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비관론자였다.
그 사람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몇 년이 지난 지금 난, 나 하나라도 안 입고 안 먹어야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린 내 촛불 하나, 투표 한 번으로 세상이 변하는 걸 경험했다.)
앞으로 최소한,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사치를 위해 동물을 소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또 내 무지로 인해 동물이 소비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이 알고 소비하겠단 다짐도 해본다.
느슨해졌던 내 다짐을 다시 조여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