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남미, 프롤로그

by someday

작년, 게으른 남미 여행을 했다.


남들 다가는 관광지에 많이 가지 않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멍하니 있고 싶을 때 멍하니 있는 여행을 했다. 실제로 나는 마추픽추도 안 가고 파타고니아 트래킹도 안 했고 이과수 폭포도 안 갔다. 심지어 중간에 집에 가고 싶다고 비행기표를 일주일 앞당겨서 귀국했다. 엉망진창 여행 같아 보이긴 해도 혼자 내 마음대로 여행했기 때문에 행복했다.


다녀와서 지인들에게 말해주었더니 "마추픽추를 안 갔다고??" "아니 거기까지 가서 폭포도 안 봤어??" "그럼 남미를 왜 간 거야!?" 하며 놀라워했다. (그렇게 놀라워하는 것에 내가 더 놀랐다!) 생각해보면 여행 중에도 다른 여행자들에게 저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마추픽추 안 갈 거예요??)


뭐, 안 갈 수도 있지! 나도 20대 초반 배낭여행 시절엔 열심히 다 갔었다. 근데 여행을 계속하다 보니 나는 동네에서 커피 마시고 어슬렁 거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더라. 나이를 먹으며 점점 게으른 여행자가 되어간다. 누군가에겐 열정이 식은 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들 시선에 상관없이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다.) 난 여행 가서 낮잠 자는 게 너어어무 좋다. 돈이 아깝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낮잠 자는 것보다 낯선 도시에 가서 낮잠 자는 게 훨씬 좋아서 어쩔 수 없다.


게으른 여행기를 써서 나처럼 게으른 여행자들에게 "저도 게을러요!" 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직 여행지 To do list 의 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게을러도 괜찮아요!" 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진지하고 감성 충만한 글보다 가볍게 읽고 피식 댈 수 있는 글이 쓰고 싶었다.


과연 이 여정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게으른 남미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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