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마추픽추를 가지 않기로 결정한 날, 나는 바로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겐 마추픽추에 대한 아쉬움 보다도 비범한? 내 결정에 대한 쾌감이 더 컸고 당장 쿠스코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가고 싶었다.
아르마스 광장의 야경을 뒤로하고 볼리비아로 향하는 야간 버스를 타러 갔다.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향하는 길, 국경에 걸쳐져 있는 바다 같은 호수, 티티카카호로 향하는 버스였다.
12~3시간 동안 '푸노'란 도시를 거쳐 코파카바나로 향할 예정. 다행히 버스정류장에서 친구끼리 여행을 왔다는 대학생 둘과 만나 함께 버스에 탔다. 야간 버스라, 이 얼마만의 야간 버스인가. 직장인 주제에 배낭여행자 코스프레를 하겠다고 10kg짜리 배낭까지 메고 야간 버스를 타는 이 광경이란! 설레면서도 허리가 걱정되는 밤이었다.
마추픽추도 보지 못한 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젖혀지지도 않는 야간 버스에 탔는데도 난, 좋았다. 너무 좋았다. 허리는 엄청 아팠지만 좋았다.
혼자 여행을 하며 좋아하는 순간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동'중인 기차/버스에서 '창밖'을 보며 '음악'을 듣는 그 순간이다. 혼자 여행을 왔다고 해도 정신없이 돌아다니거나 먹을거리를 찾거나 다른 여행자들과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생각보다 적다. 허나 홀로 이동 중에는 멍하니 생각에 잠길 수 있고 음악과 풍경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 완벽한 순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아직 고산지대라 머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지만 몸과 상관없이 내 정신은 맑게 깨어 상념에 빠져들었다.
버스는 밤새 달렸고 아침이 되자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10년 전 금강산 갈 때 이후 처음으로 도보로 국경을 넘는 경험을 했다.
입국 심사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 20여분을 더 달려서 드디어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다. 쿠스코와 달리 따뜻한 날씨와 저 멀리 바다같이 보이는 티티카카 호수의 절경에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